[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삼성·ASML 실적 뚝…업황 위축 신호인가

반도체 겨울
네덜란드 ASML의 클린 룸.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회사다. 한경DB
“반도체 시장은 꺾일 일만 남았다.” “아니다. 성장 여력이 더 남았다.”

이른바 ‘반도체 겨울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되살아나던 반도체 업황이 고점에 도달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2021년 ‘반도체 겨울이 온다(Memory winter is coming)’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해 증시를 발칵 뒤집어놓은 모건스탠리가 3년 만에 다시 반도체 겨울론에 불을 지폈다.

모건스탠리 “D램 수요 위축, HBM은 공급과잉”

반도체 겨울이란 상승과 하락 사이클을 반복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 전반의 업황이 하강기에 접어드는 상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겨울은 항상 마지막에 웃는다(Winter always laughs last)’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스마트폰·PC 수요 감소로 D램 가격이 하락하고, 인공지능(AI) 시대에 주목받는 최신 반도체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공급과잉을 맞게 될 것이란 내용이다.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54% 낮추고(26만→12만원) 투자 의견도 하향(비중 확대→비중 축소)하는 등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이후 국내외 반도체 기업이 3분기 실적을 속속 공개하고 있는데, 몇몇 업체가 시장의 기대를 밑돌면서 반도체 겨울론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은 3분기 수주(26억 유로)가 예상치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수요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고객사들이 투자를 일부 미루고 있다”며 “수요 부족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 메모리 기업인 삼성전자는 영업이익(9조1000억원)이 전 분기보다 1조원 이상 줄었다. 투자자에게 ‘사과문’을 썼을 정도로 부진한 결과다. D램 판매가 예상보다 부진한 데다 HBM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다만 반도체 업계는 “모건스탠리의 시각은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반박한다.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한 ‘음모론’이란 반응마저 나온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알파벳·메타 4사의 올 상반기 총 설비 투자액은 1년 전보다 49% 늘어난 1062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빅테크는 내년에도 AI에 공격적으로 투자한다는 입장이다.

AI 투자 열기 지속…“우려 과장됐다” 반론도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반도체 전체가 하강기에 진입한다기보다 기업 간 양극화가 나타나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주력 사업이 AI 반도체인지,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했는지, 강력한 1위인지 아닌지 등에 따라 주가와 실적이 갈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I에 강한’ 반도체 기업의 실적은 3분기에도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엔비디아 칩을 대신 생산해주는 대만 TSMC는 매출과 순이익이 1년 전보다 각각 54%, 39% 급증했다.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 역시 상승세를 이어갔다. 웨이저자 TSMC CEO는 “AI 시대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