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말,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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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원문]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에 수록된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중에서.....
[태헌의 한역]
言語(언어)
言生乎人口(언생호인구)
終竟死於耳(종경사어이)
然而某種語(연이모종어)
不滅住心裏(불멸주심리)[주석]
* 言(언) : 말, 언어. / 生乎(생호) : ~에서 생기다, ~에서 태어나다. / 人口(인구) :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뜻하는 ‘인구’가 아니라 사람의 입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시어이다.
* 終竟(종경) : 마침내. 한역(漢譯)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는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死於(사어) : ~에서 죽다. / 耳(이) : 귀.
* 然而(연이) : 그러나, 하지만. / 某種語(모종어) : 모종의 말, 어떤 말.
* 不滅(불멸) :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다, 죽지 않다. / 住心裏(주심리) : 마음 속에서 살다.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를 간략히 하여 한역한 표현이다.
[한역의 직역]
말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마침내 귀에서 죽는다.
그러나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 마음속에서 산다.[한역노트]
역자가 한역(漢譯)한 시의 원문은 시가(詩歌)가 아니라 산문의 한 대목이지만, 이치(理致)를 담론하는 철리시(哲理詩) 계열의 짧은 시가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화두처럼 던져진 이 대목은, ‘말[言語]’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명제를 우리에게 환기시켜주면서 동시에 말의 중요성을 은근히 일깨워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만큼 소중한 것도 별로 없다. 말은 그 사람의 감정과 의지 등을 아주 간편하게 직접적으로 표달(表達)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사람의 입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요컨대 말이 귀에서 죽는다는 언급에는 다소 의아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역자가 보기에 말이 귀에서 죽는다는 것은, 말이 귀에 닿아 누군가에게 들리게 하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말의 역할이 딱 여기까지인 것은, 귀에 닿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말고는 순전히 듣는 사람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했는데도....”와 같은 상투어가 말의 이러한 한계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모든 말이 듣는 사람의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 마음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며, 또 살아남는 말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데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말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마음속에 남아 거의 평생을 가기도 하는데,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긍정적이지 못한 말, 이를테면 아픔이거나 슬픔이거나 분노거나 증오인 말들이 이러한 유형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죽지 않고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 말’이 긍정적인 것일 때, 말의 오랜 생존(生存)은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역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말을 죽지 않고 살아남게 하려면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명심(銘心)이다.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렸다면 마음에 새겨둔 것이 없을 것이다. 딱히 새겨둔 것이 없어 공허하고 스산할 마음의 들녘에서 과연 무엇을 거둘 수 있겠는가! 옛사람들이 마음에 새겨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글로 써서 책상 주변에 붙여둔 것이 바로 좌우명(座右銘)이다. 그리고 글은 문자로 변환된 ‘말’이기 때문에, 말과 동일시하여도 무방하다. 다만 말이 보다 더 즉흥적인 것이라면, 글은 말이 문자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말보다는 좀 더 정제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누군가의 생각이 투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우리는 지금 말의 홍수, 아니 숫제 말의 바다 속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라 하더라도 이 말만큼 과도하게 넘쳐나는 것은 아마 없을 듯하다. 이렇게 과도하게 넘쳐나는 말이 모두 주옥(珠玉)과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대다수가 공해에 가깝다는 것이 역자의 솔직한 판단이다. TV 또는 라디오를 켜거나 각종 SNS에 접속을 해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그 말들 때문에 정말이지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러한 말은 우리가 귀를 막고, 눈을 감음으로써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말을 안 하고는 살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공해나 진배없는 말의 바다를 탓하기에 앞서 ‘나’ 역시 그 말의 바다에 물줄기를 보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그러므로 글쓴이의 이 글은, 우리에게 ‘말하기’에 유의하라는 경고의 뜻을 숨겨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내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말이 좋은 의미에서 그 사람의 마음에 오래도록 살아 있게 하자면, 생각 없이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자가 그 언젠가 무슨 책을 보다가 “잘 생각하지도 않고 하는 말은, 겨누지도 않고 총을 쏘는 것과 같다.”고 한 대목에서 본인도 모르게 무릎을 친 적이 있었다. 이 시대의 이른바 ‘아무말 대잔치’는 실로 위험하기까지 하니, 말을 총에 견준 것이 조금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말이라는 총의 난사(亂射)가 어찌 일부 정치인들만의 문제에 그치겠는가!
역자는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에 수록된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중의 두 구절을 따와 4구의 오언고시로 한역하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글쓴이와의 접촉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늘 이 한역시를 소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혹시 글쓴이 본인이나 글쓴이를 아는 독자께서 이 칼럼을 보고 역자에게 연락을 취해 준다면, 주저 없이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해드릴 생각이다. 역자는 한역하는 과정에서 원문에는 없는 말을 임의로 보태기도 하였으며, 또 원문을 얼마간 변형시키기도 하였다. 짝수 구마다 압운하였으므로 이 시의 압운자는 ‘耳(이)’와 ‘裏(리)’가 된다.
2024. 10. 29.<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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