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침대 매트리스를 뜯어 캔버스에 발랐다 … '실험적 작가'의 서울 신고식

서울 용산구 쾨닉 서울
클레디아 포르니오 개인전 '매쉰업'

레진, 물감, 가죽, 표백제까지
한 캔버스에 모두 섞는 실험 펼쳐
클레디아 포르니오, 220 greeeennnneeee, 2024
여러 곡을 한데 섞어 새 곡을 창조하는 음악 장르를 ‘매쉬업’이라고 부른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이 만나는 등 전혀 접점이 없을 듯한 음악들이 섞이면서 새로운 매력을 가진 곡이 탄생한다. ‘매쉬업’ 장르를 미술에도 적용한 작가가 있다. 2020년부터 전시를 시작한 프랑스 신진 작가 클레디아 포르니오다.

그는 모형 제작용 합성수지인 레진, 가죽, 천, 물감 등 여러 이질적 재료들을 한 화면 안에 섞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포르니오가 아시아에서 여는 인생 첫 번째 전시를 서울에서 연다. 서울 용산구 쾨닉 서울에서 개막한 개인전 ‘매쉰업’이다. 전시 제목도 ‘매쉬업’에서 따 와 지었다. 여러 재료와 기법이 섞인 포르니오의 작품에는 다양한 매력이 존재한다. 광택의 반짝거림과 매트한 질감이 한 화면 안에 존재하거나, 차분하고 어두운 색감과 형광빛 색채가 같은 작품 안에 공존한다. 매우 다른 요소들이 결합하며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그림으로 전달한다.
서울 용산구 쾨닉 서울에서 열린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클레디아 포르니오.
그는 파리 고등예술학교에서 공부하며 재료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우연히 손에 잡히는 재료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깊이 탐구하기 시작했다. 매일 각자 다른 재료들을 혼합하며 작품을 만드는 데 몰두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대부분의 회화 작품 테두리에는 강렬한 오렌지색 레진이 씌워졌다. 포르니오는 이를 두고 “내 작업을 기록하는 나만의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실리콘으로 만든 레진을 유독 애정하는 이유는 재료가 가진 광택감에 있다. 물체를 반사시키는 성격을 가진 레진으로는 마치 '색깔 거울'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 서면 스스로가 작품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있다. 포르니오는 “내 그림을 보며 관객이 스스로 내면의 대화를 수 있길 바라는 의도가 담겼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 쓴 재료들도 있다. 금과 은으로 만든 안료, 유화다. 그림 위에 표백제를 뿌려본 시도도 처음이다. 포르니오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우연의 절묘함'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한쪽 벽에 걸린 두 회화가 완성 직전에 맘에 들지 않아 작업을 엎게 된 것.
클레디아 포르니오, 190 le roi et l’oiseau & linenlove, 2024
전시 직전 새 캔버스를 꺼내자 맘이 급해진 포르니오는 실수로 물감이 아니라 토끼 가죽으로 만든 코팅제를 잘못 발랐다고 한다. 계획에 없던 재료가 만들어내는 특이한 질감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실수가 만든 작품은 이번 전시의 메인 작업이 됐다.

이번 전시 직전에 펼쳤던 단체전을 통해서는 ‘천‘이라는 새로운 재료에 빠지게 됐다. 린넨으로 캔버스를 만드는 실험을 시작하면서다. 포르니오는 “인간의 몸에 관심이 많은데, 천이 신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소재라고 생각하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작업의 연장선으로 의류나 옷감을 이용해 캔버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클레디아 포르니오, 190 YEARN, 2024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천 캔버스' 실험은 계속된다.캔버스 옆면에 잠옷에 쓰이는 천을 덧댔다. 프랑스 작업실 옆 폐기물 창고에서 발견한 병원 침대 매트리스 커버를 벗겨 캔버스에 씌우기도 했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천에 프랑스어로 '건강'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광택이 감도는 작품을 쓰기 때문에 그의 전시에서는 관객도 참여자가 된다. 빛에 반사되는 각도에 따라 작품의 매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람이 서는 위치, 시선의 각도에 따라 감상이 달라진다. 그림 위 색감도 빛에 따라 변한다.

모두 다른 작품을 벽에 나열한 전시 구성도 눈에 띈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그림들이 모두 나란히 걸려 있기 때문이다. 포르니오의 작업실 모습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는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하는 대신 동시에 많은 작업을 하는 작가다. 자신의 작업 과정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러한 전시 구성을 택했다.
서울 용산구 쾨닉 서울에 걸린 클레디아 포르니오의 작품들. 왼쪽부터 165 violet glossy & matte, 190 YEARN, 180 yellow and gold, from hell. 모두 포르니오가 2024년에 작업한 신작이다.
또 가장 간결한 작품을 가장 화려한 작업 옆에 두는 구성도 보여준다. 완전히 달라 보이는 두 작품은 사실 포르니오가 동시에 작업한 작품들이다. 그는 이런 반전 구성을 통해 간결함, 생동감을 모두 가진 작가라는 사실을 국내 관객에게 인식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포르니오는 서울에 7개월간 머물며 작품에만 몰두했다. 서울 시내에 작업실까지 얻었을 정도다. 재료를 탐구하는 작가답게 한국에 머무는 기간동안 도시 곳곳을 다니며 재료 연구를 거듭했다. 인사동에서는 한지와 자개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자개로 작은 악세서리뿐만 아니라 대형 가구까지 만들어내는 장인들의 모습은 포르니오에게 자극제가 됐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