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험사 '실적 부풀리기' 논란에…IFRS17 '대수술'

당국, 보험 해지율 등 제도 개선
보험사 수익성·건전성 ‘초비상’
일부社 적기시정조치 가능성도
M&A·시장 순위 지각변동 예고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보험업권에 도입된 새 회계기준(IFRS17)이 수술대에 오른다.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 시행 후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이 실무표준(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다. 가이드라인 적용 시 보험사 실적은 대폭 쪼그라든다. 보험사 순위가 뒤바뀌거나 인수합병(M&A) 작업에 차질이 발생하는 등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25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IFRS17 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는 4차 보험개혁회의가 다음 달 4일 열린다. 이날 회의에선 그간 논란이 됐던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가정 △연령대별 손해율 가정 △사업비 과다 집행 △지급여력(K-ICS·킥스) 비율 등과 관련한 제도 개선안이 공개된다.이번 제도 개선의 핵심은 회사마다 제각각인 계리적 가정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다. 일부 보험사가 단기 성과에 유리하게 해지율을 주무른다는 의혹이 불거진 데 따른 조치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월 보험업권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에서 “보험사들이 IFRS17 도입을 기회로 삼아 단기성과 상품의 출혈경쟁을 펼친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보험사뿐 아니라 회계법인, 투자자 등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제도 개선이 보험사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형 손해보험사 중에선 보험계약마진(CSM)이 최대 1조원 넘게 급감하는 곳도 있다. 보험사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킥스 비율이 금융당국 권고치(150%)나 법정 기준(100%)을 밑도는 회사가 속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대부분 보험사는 강하게 반발하며 절충안을 요구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마다 고객과 상품 특성이 다른데 일률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건 IFRS17 철학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적용 땐 CSM 최대 1兆 뚝"…보험사 '초비상'

금융당국이 IFRS17 시행 2년 만에 대대적인 수술에 나서는 건 보험사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치를 사용해 실적을 부풀리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져서다. 회사들이 저마다 다른 가정치를 사용해 재무정보의 신뢰성과 비교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의식도 있다. 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보험사의 CSM은 최대 1조원 넘게 감소하고 킥스 비율이 급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는 “당국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다음달 4일 열리는 보험개혁회의를 일주일 앞두고 당국과 업계의 막바지 의견 조율이 진통을 겪고 있다.

실적 '경고등' 켜진 보험사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보험개혁회의에서 논의 중인 IFRS17 안건은 다섯 가지다. △무·저해지 보험 해지율 가정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가정 △연령대별 손해율 가정 △사업비 과다 집행 △킥스 비율 등과 관련한 제도 개선안이 다음달 4일 발표될 예정이다.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건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 가정이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료 납입 기간에 계약을 해지하면 환급금을 주지 않거나 적게 돌려주는 상품이다.

보험사가 예상 해지율을 높이면 보험료를 낮춰 공격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 또 미래에 지급해야 할 보험금 규모를 적게 추정해 CSM을 크게 잡는 효과도 있다. 그간 업계와 학계에선 단기 실적에 매몰된 보험사들이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낙관적으로 추정해 미래로 리스크를 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당국이 마련한 가이드라인은 납입완료 시점의 해지율을 0%에 수렴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현재 보험사가 추정하는 해지율보다 훨씬 낮은 수치가 적용된다. 그 결과 보험사의 수익성과 건전성 지표는 모두 크게 악화한다. 최선추정부채(BEL)이 급증하고 CSM은 급감하는 식이다. 가용자본이 감소해 킥스 비율도 급락한다.그동안 보험사들은 실적 발표나 경영계획 수립 시 CSM과 킥스 비율을 핵심 지표로 관리하고 있었다. 보험사뿐 아니라 회계법인, 투자자들도 이번 제도 개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단기납 종신보험도 손 본다

금융당국은 생명보험사의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에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보험사들이 단기납 종신보험의 10년 시점 해지율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초 생보사들은 단기납 종신보험의 10년 시점 환급률을 130%대까지 끌어올리며 저축보험처럼 판매했다. 생보사 역시 이번 제도 개선으로 최대 수천억원가량의 CSM이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손보업권의 무·저해지 보험과 비교하면 영향도가 작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국 관계자는 “그동안 회사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치를 사용해 실적을 부풀리고 있었다”며 “비정상적이었던 회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무·저해지 보험, 단기납 종신보험과 관련해 각각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보험사로부터 재무영향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해당 상품을 많이 팔고 해지율을 낙관적으로 적용한 회사일수록 타격이 크다.

무·저해지 보험에서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대형 손보사 A사와 B사의 BEL은 각각 1조4000억원, 9000억원가량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EL 증가분은 CSM과 순이익 감소로 이어진다. 매각을 추진 중인 손보사 C사의 경우 CSM이 최대 30%가량 급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고무줄 회계’는 바로잡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인 안을 적용하면 업계 충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과 다르게 미래 해지율이 높다면 누가 책임을 질 건가”라고 꼬집었다. 다른 관계자는 “보수적인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무·저해지 보험의 보험료가 최대 30% 넘게 오를 수 있다”며 “결국 소비자만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금융당국은 최종 발표를 앞두고 세 가지 시나리오를 마지막까지 저울질하고 있다. 이번에 마련되는 IFRS17 제도 개선안은 올해 연말 결산부터 적용된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