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거들떠보지 않는다"…삼성전자 향한 '무서운 경고' [위기의 삼성전자 上]

[위기의 삼성전자 上]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
"과거 성공 방정식 더 이상 안 통해…戰線 줄여야"

"다각화된 사업 영역…싸움터 너무 많아"
"엔비디아 공급망 합류해도 시장 확보 어려워"
"내년 하반기에나 주가 반등 모멘텀 살아날 것"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최근 삼성전자 경쟁력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애플 아이폰에 주도권을 넘겨줬고 중국 업체의 저가폰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는 엔비디아 공급망에 합류하지 못했고 파운드리(위탁 생산)에서는 TSMC와의 기술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황마저 악화하면서 삼성전자는 '나홀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 사이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모든 자산을 장부가치로 청산한 '청산가치' 밑으로 떨어졌다. 한경닷컴은 증권가 전문가들에게 '5만전자'로 밀려난 삼성전자의 향배를 물었다.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모든 사업 부문들이 2~3등으로 밀렸습니다. 과거 1등 주의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대변합니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사진)은 28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다음은 김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 외국인의 삼성전자 매도가 33거래일째 이어졌다.

"글로벌 제조업 경기가 부진하고 레거시(구형) 반도체 업황 부진, 고대역폭메모리(HBM)와 파운드리 등 미래 사업 경쟁력이 약화한 점이 맞물렸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경우 글로벌 테크 밸류체인(가치 사슬) 안에서 소비재 공급자로서의 면모가 강하다. 구형 반도체가 주력일 수밖에 없는 삼성전자는 중간재·자본재 공급자로서 제조업 경기와의 연동성이 강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서비스 경기가 순환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제조업 경기는 여전히 부진하다. 결국 구형 반도체 업황이 개선되려면 글로벌 경기가 더 좋아져야 하고, 금리 인하에 따른 낙수효과도 나타나야 한다. 미국 신정부 출범 이후 재정 부양이 전면화할 필요도 있다. 그 시점은 내년 하반기가 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구 상상인증권 연구원. /사진=상상인증권
▷삼성전자의 근본적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달린다.

"'1등 또는 혁신 DNA'의 실종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HBM, 파운드리 등 사업 영역이 다각화된 탓에 미래 기술 트렌드 경쟁에서 싸움터가 많다. 그런데 각 사업 부문에서 1등 기업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미래 기술 시장은 승자독식 구조로 가고 있다. 1등 기업에는 시장이 유동성을 풍부하게 공급해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2~3등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현재 AI, 모바일 등에서도 1등 기업만 살아남고 있다. 삼성전자가 과거와 달리 모든 부문에서 2~3등으로 밀려난 게 경쟁력이 본질적으로 약화됐음을 대변한다."

▷엔비디아로의 HBM 납품 지연에 우려가 크다."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납품하기 시작해도 SK하이닉스의 선점 영향으로 우월적 지위를 점유할 가능성이 미미하다. 엔비디아가 마이크론이나 삼성전자를 통해 공급선을 다변화할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공급선 다변화로 엔비디아의 협상력이 올라가면 삼성전자, 마이크론, SK하이닉스는 가격 경쟁력을 해야 한다. HBM 단가 하락과 마진율 축소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선도 주자인 SK하이닉스는 계속 우월적 지위를 가져갈 것이다. 문제는 삼성전자다. 뒤늦게 퀄리티 테스트를 통과해 엔비디아 공급망에 들어가도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얼마 차지하지 못할 것이다."

▷HBM4(6세대) 선제 개발로 역전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엔비디아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할 것으로 본다. 물론 경쟁사보다 HBM4를 먼저 개발해 기술적 측면의 위상을 자랑할 경우 이게 곧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경쟁사보다 압도적 기술을 내놓으면 그간의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의문부호가 달리는 건 지금까지도 잘 안됐는데, 다음 세대 제품부터 경쟁 주자를 앞서갈 수 있겠냐는 점이다. 본질적인 의문이 따라붙는 상황이다. 결국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삼성전자는 싸움터가 많다는 게 문제다. '아재폰'이 된 갤럭시는 애플에 치이고, 이재용 회장은 취임 후 파운드리에서 2030년까지 TSMC를 따라잡겠다고 했지만, 수율 문제로 고객사의 신뢰를 잃었다. 삼성전자 사업 영역이 다각화된 탓에 주요 업체와의 협업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파운드리를 분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도 여기서 출발한다. 이를 차치하고서라도 본질적으로 기술력에서 고객사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그럼에도 개인의 추격 매수가 거세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저평가됐다는 건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시장에 대체재가 너무 많다. 삼성전자에 투자하기에는 기회비용이 크다는 의미다. 반도체에 투자할 생각이라면 SK하이닉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삼성그룹주를 좋아해 장기 투자할 개인이라면 차라리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업종 중에서는 바이오, 조선·기계, 은행 등이 우회로 확보에 유리하다. 이처럼 시장에 다양한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데 굳이 삼성전자 하나만 붙들고 있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내년 하반기께 금리 인하와 재정 부양 효과 등이 나타나 투자 모멘텀(상승 동력)이 살아날 때쯤에나 반등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당장은 쉽지 않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