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한국과 밀착하는 'NATO의 창끝'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얄타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폴란드였다. 미국과 영국은 런던에 있던 자유 망명정부를 승인했지만 소련은 자신들이 폴란드 동부 루블린에 세운 정권을 지지했다. 종전 후 자유선거를 치르기로 합의했지만 소련 손아귀에 있던 폴란드는 결국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했다. 폴란드에 러시아(옛 소련)는 ‘재앙’이었다. 1795년 러시아와 프로이센·오스트리아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해 123년간 지도에서 지워버린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1939년엔 스탈린이 히틀러와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고 폴란드를 쪼개기로 합의했다. 소련은 폴란드 점령 뒤 장교, 경찰, 지식인 2만2000명가량을 끌고 가 카틴 숲에서 학살했다. 폴란드 독립의 씨앗까지 말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폴란드는 독립의 열망을 잊지 않았고 1990년 자유노조 운동을 이끈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러시아 지배에서 벗어났다. 이후 폴란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서방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며 ‘NATO의 창끝’으로 거듭났다.폴란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다음으로 자신을 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산 무기 수입에 적극적인 이유다. 이미 다연장로켓 천무, K-2 흑표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를 수입하며 한국의 최대 방산 고객이 됐다. 한국도 최근 폴란드산 자폭 드론(무인기) 200대가량을 146억원에 들여오기로 했다. 북한이 자폭형 드론 개발에 속도를 내자 가성비 좋은 폴란드 드론에 눈을 돌린 것이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해 지난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양국이 수교한 건 1989년 11월 1일로 다음달이면 수교 35주년을 맞는다. 수난의 역사를 거쳤지만 두 나라는 단기간에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냈고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며 미국을 동맹으로 두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러시아의 위협은 두 나라를 더 밀착시키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도 북한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교두보로 폴란드의 전략적 가치가 높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