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파행…'최임위 판박이' 배달앱 상생협의체

현장에서

인원 너무많아 깊은 논의 어렵고
중재안 '5%' 실증적 근거 부족
플랫폼-입점업체 입장 차이 커

이광식 경제부 기자
지난 7월 자영업자의 배달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야심 차게 출범한 ‘배달플랫폼·입점업체 상생협의체’가 결국 빈손으로 끝날 분위기다. 이달 말 활동 종료를 앞두고 지난 23일 열린 8차 회의서도 플랫폼과 입접업체는 이견을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오는 30일 사실상 마지막 회의가 열리긴 하지만, 입장 차이가 워낙 커 합의에 이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핵심 쟁점은 수수료율이다. 입점업체는 ‘수수료 5% 상한제’를 고수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은 매출에 따른 수수료 차등화를 상생안으로 제시했다. 쿠팡이츠는 소극적으로 대응하다 뒤늦게 8차 회의에서 수수료율을 현행 9.8%에서 5%로 일괄 낮추는 상생안을 제시했다. 다만 배달 기사에게 지급하는 배달비를 입점업체들이 대신 내는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전문가들은 상생협의체가 매년 파행을 빚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한다. 최임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된다. 첨예한 이해 관계자들이 대립하다 보니 최저임금 결정 법정기한을 매년 넘기기 부지기수다. 상생협의체도 공익위원 4명과 함께 배달 플랫폼과 입점업체서 각각 8~9명씩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를 두 시간 한다고 가정하면 한 명이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다. 양측 간 마음을 터놓은 ‘스킨십’은 아예 기대할 수 없고 첨예한 양측 입장만 재확인하는 구조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들의 중재안 산출 방식이 주먹구구라는 점도 비슷하다. 최임위에서 공익위원들이 제시하는 중재안은 임시방편일 뿐 매년 계산방식이 달라진다. 노사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한다. 상생협의체도 마찬가지다. 공익위원들이 중재안으로 내놓을 수수료율 상한선으로 유력한 ‘5%’도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 ‘왜 수수료율이 5%인지’라는 질문에 공익위원들이 과연 답할 수 있을까.

다행인 것은 최임위와 달리 배달앱 상생협의체는 법정시한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임위의 파행 사례를 거울삼아 지금이라도 운영 방식을 바꿔보면 어떨까. 양측이 대국민 공개 토론에 나서는 것도 생각해 보자. 양측은 ‘순망치한’(脣亡齒寒)처럼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다. 반걸음씩 물러설 수 있다는 자세로 협상한다면 상생을 위한 합의가 불가능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