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실넘실 파도치는 조승우의 '햄릿'…독보적이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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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우의 연극 데뷔작 '햄릿'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전회차 매진을 기록한 예술의전당의 '햄릿'.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지난여름 신시컴퍼니와 국립극단의 무대로 이미 관객을 만난 작품이다. 올해에만 두 번이나 무대에 오른 400년 전 고전에 이 정도로 뜨거운 관심은 유별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조승우 효과'다. 데뷔 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 한국 공연계 최고 스타 조승우를 보기 위해 예술의전당 로비는 관객으로 가득했다.
생명력 넘치는 연기 눈부시지만
주변 인물 평면적이고 역동성 부족해
원작 희곡에 충실한 점은 강점
작품만의 매력은 느껴지지 않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11월 17일까지
조승우가 맡은 역할은 덴마크 왕자 햄릿. 햄릿의 어머니인 여왕 거트루드는 선왕이 죽자마자 그의 동생 클로디어스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클로디어스는 햄릿의 삼촌이자 새아버지, 그리고 새로운 왕이 된다. 햄릿이 클로디어스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이유다. 꼬일 대로 꼬여버린 가족사에 햄릿은 어머니를 향한 배신감, 그리고 삼촌을 향한 복수심에 휩싸인다.조승우는 기대를 뛰어넘는 생명력으로 무대를 휘어잡는다. 실성한 미치광이부터 고뇌하는 철학자, 복수심에 불타는 아들까지 폭넓은 캐릭터가 응축된 햄릿이 살아숨쉰다. 조용히 속삭이듯 한숨처럼 내뱉는 독백부터 분노에 치밀어 지르는 괴성까지 대사가 넘실넘실 파도치지만 과하지 않은 완급조절이 돋보인다. 섬세한 감정연기에도 단어 한마디 한마디가 또렷이 들리는 조승우 특유의 발성과 발음도 빛난다.
그에 비해 주변 인물들은 밋밋하다. 죄책감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거트루드의 고민이 잘 느껴지지 않고 갑자기 애틋한 어머니의 옷을 입는다.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아도 햄릿의 광기에 상처받는 모습에 머물러 비극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햄릿을 향한 증오심에 불타던 레어티즈도 너무 쉽고 다정다감하게 햄릿을 용서한다.
공연은 원작 희곡에 충실하다. 군더더기 없는 무대에 셰익스피어 특유의 운율이 살아있는 대사의 맛도 살아있다. 햄릿의 어린 시절 친구 길덴스턴과 로렌크란츠가 실성한 척하는 햄릿 사이에 오가는 도발적인 유머도 간결하고 재치 있다.다만 이 '햄릿'만의 매력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평면적인 주변 인물이 이 문제를 더욱 부각한다. 햄릿 혼자 뜨겁고 나머지 인물들이 역동성이 없어 햄릿의 이야기를 받쳐주는 역할에 그친다. 주인공이 삶과 죽음, 영혼의 순수함과 도덕성에 이르는 깊은 고민을 쏟아내지만 이에 대응할 캐릭터가 부족해 일방통행으로 흘러간다.
진득하게 가슴 옥죄는 인간적인 고뇌와 딜레마가 깊게 담긴 예술의전당의 '햄릿'. 그 자체로도 '햄릿'의 힘은 느껴지지만, 이 작품만의 색깔을 찾는 관객에게는 고전을 '재연'하는 무대로 느껴질 수 있다. 공연은 11월 17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린다.
구교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