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끼 53만원' 쓴 변협, 자료 요청에 감사 거부

변협, 정기감사 논란

'한도 5000만원' 법인카드
"지출내역 소명 요구 거부"
변협 "4월 총선 출마한 감사
이미 사퇴한 것으로 판단"

로톡 변호사 무더기 징계 이후
'헤게모니' 싸움 심화 우려
대한변호사협회 집행부가 분기마다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감사를 거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접대 또는 로비 명목으로 매달 수백만원의 예산을 쓴 것과 관련, 구체적인 지출 내역 등을 제출하라는 감사 측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해외 출장에선 1700만원 지출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선거를 통해 감사로 선출된 변호사 A씨는 올해 4월 예정돼 있었던 1분기 정기 감사를 하지 못했다. 변협 감사 규정에 따르면 감사는 매 분기 종료 후 30일 이내에 직전 분기 업무 및 회계 전반에 관해 감사를 해야 한다.

지난해 네 차례 감사에서 변협 집행부에 반복적으로 시정을 요구한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는 게 A감사 주장이다. A감사는 현 집행부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해 왔다. 일례로 변협은 정무이사 2명과 여의도 분사무소에 상주하는 입법지원실장에게 대(對)국회 활동을 명목으로 한도가 5000만원에 달하는 법인카드를 지급해 식대 등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외에 집행부 임원 일부가 한 끼 식사비가 1인당 18만원에 이르는 일식집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한 내역, 상임이사 2명이 술값으로 53만원을 지출한 내역 등이 확인됐다. A씨는 부정청탁금지법이 정한 1인당 3만원(현재 5만원으로 상향)을 초과한 건에 대해 초과 금액을 전액 환수할 것과 지출 내역 전수 감사, 입법지원실장 등의 구두 소명 등을 요구했으나 김영훈 변협회장(사법연수원 27기)이 일방적으로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잦은 해외 출장에서도 과도한 비용을 사용했다는 게 A감사의 지적이다. 김 회장 등 변협 임원 4명은 지난해 아시아변호사단체장회의(POLA) 참석차 말레이시아를 다녀왔는데, 개최국인 말레이시아와 인접국인 싱가포르를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일본 3명, 인도 3명, 대만 3명, 인도네시아 2명) 대비 과한 인원을 보내 불필요한 비용을 지출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 ‘2023 미국변호사협회(ABA)’ 연차총회에서 김 회장 등 2명의 임원이 3박4일 동안 1760여만원을 쓴 점, 김 회장이 신설한 직책인 국제특별보좌관이 특별한 업무 성과 없이 1000만원이 넘는 경비를 지출한 점 등을 예산 과다 지출의 근거로 지목했다.

변협 측 “거부한 적 없어” 반박

변협은 감사를 거부한 사실이 없으며 A감사가 지난해 4월 총선에 출마하면서 선거공보에 ‘전(前) 변협 감사’라고 기재한 점을 들어 그가 감사직을 사퇴한 것으로 봤다는 입장이다. A감사는 공보물 제작업체의 실수로 인한 오기에 불과하며, 사퇴 절차를 정식으로 밟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황당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변협 관계자는 “A감사의 자료 제출은 부적절한 요구여서 응할 수 없다는 점을 소명했다”고 말했다. 변협 측은 특히 A감사가 최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을 들어 그의 감사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 출장과 관련, 김 회장은 “항공비와 숙박료 등 꼭 필요한 비용이 대부분이었고, 행사의 실익을 따져 올해 ABA 연차총회는 불참을 결정했다”며 “국제특별보좌관의 경우 외교부와의 업무협약(MOU)을 기반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반박했다. 2026년 아시아·태평양지역법률가협회(LAWASIA)를 한국에 유치한 것도 성과라는 설명이다.

예산 문제 외에도 직능단체로서 변협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다. 집행부를 장악한 소수의 의견이 변호사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온라인 법률 서비스 로톡에 가입한 회원 1440명에 대한 무더기 징계다.법조계 관계자는 “변호사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건 수임보다는 변협을 포함한 각종 단체에서 일종의 ‘헤게모니’를 만들어 돈벌이하려는 정치꾼 변호사들이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