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의 지옥도, 물에 잠긴 마을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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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머물다 간 장흥 핫스폿SBS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는 지난 9월 방송과 동시에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시청자들은 매회 ‘사이다를 마신 것 같다, 통쾌하다’ 등의 반응을 보냈다. 드라마의 핵심은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린다’에 있다. 지옥에서 온 악마가 법의 심판을 피한 인간을 벌하여 지옥행 열차를 타게 하는 것이다.장흥의 보림사에서 파란만장한 현생과 불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차례로 보았다. 대적광전 외벽에는 부처의 일생을 담은 팔상전이 담겨 있다.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과 이치가 너무 극적이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대웅보전 옆의 아담한 전각은 명부전이다. 검은색 용이 지붕에 내려앉아 풍기는 기운이 강렬하다. 명부전은 사후세계를 담은 전각으로, 지장전으로도 불린다.외벽에 그려진 것은 지옥도다. 각기 다른 형벌을 받는 오차, 기아, 분시니 등 10대 지옥이 생생하다. 현생은 순간의 모음이고, 수많은 선택의 결괏값이다. 그러니 현실에 충실하되 허튼 생각을 하지 말라는 성인의 꾸짖음이 보림사 너른 경내에 메아리치는 듯하다.가을 색이 점차 짙어지는 계절이다. 보림사를 감싼 비자나무 숲은 많은 사람이 꿈꾸는 천상처럼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고, 대적광전에 모신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흐르는 시간 속에 그윽한 미소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물에 잠긴 마을지난 2006년, 무려 십 년에 걸쳐 장흥다목적댐(이하 장흥댐)이 완공되었다. 댐은 그 이름처럼 여러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목포시를 비롯한 전남 서남부지역 10개 시군의 식수를 책임지고, 농업과 공업용수에 활용되며 장마철 홍수를 막고, 전기를 생산한다.한편, 장흥다목적댐의 건설로 장흥군 유치면에서 19개, 부산면 지천리 1개, 강진군 옴천 1개 마을 일부가 수몰되고, 697가구 2200여 명이 수몰민이 되었다. 장흥댐물문화관에서는 댐의 역할과 기능은 물론 수몰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을 여러 전시물로 조명한다.장흥댐물문화관에서 차로 10여 분 거리에는 신풍갈대습지가 있다. 가장 많은 마을이 수몰된 유치면에 자연스럽게 습지가 생긴 것이다. 물에 잠긴 마을에 하늘을 비추는 커다란 물웅덩이가 고였다. 마당에는 갈대가, 뒤뜰에는 고사목이, 안방에는 강이 흐른다.사람이 살았던 흔적과 기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이름과 존재로 재탄생하는 건 아닌지, 수몰민의 애환이 서려있는 신풍갈대습지는 아름답다. 목재 덱을 따라 산책에 나설 수 있으며, 가을에는 파스텔톤 코스모스가 만개해 운치를 더한다. 정상미 기자 vivi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