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르 수십번 연기했지만 배역 주어질 때마다 연구에 몰두"

15년만에 박세은과 국립발레단 무대에서 다시 만난 김기민
다음달 1,3일 에서 솔로르 연기
"니키아 역 박세은을 뒤에서 잘 받쳐주는 역할하겠다"
"박세은 누나와 14년만에 파트너로 같이 무대에 서서 설렙니다. 그때 함께 했던 작품도 <라 바야데르>였거든요."
27일 늦은 밤, 마린스키발레단 중국 투어를 마치고 한국으로 입국한 김기민(32)은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마린스키발레단은 10월 중순 중국의 3개 도시를 돌며 <해적>, <라 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했다.김기민은 러시아로 돌아간 동료들과 떨어져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오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에서 파리오페라발레단 수석무용수인 박세은과 주역으로 호흡을 맞춘다. 김기민은 이날 박세은을 보자마자 포옹을 하며 반가운 마음을 드러냈다.

<라 바야데르>는 무희 니키아와 젊은 전사 솔로르, 왕국의 공주 감자티의 삼각관계를 3막에 걸쳐 다룬 고전 발레다. 솔로르 역의 김기민과 니키아 역의 박세은은 다음달 1일과 3일,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은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버전의 작품을 올리는데, 막과 막 사이 마임으로 구성된 장면을 춤으로 채워넣어 볼거리를 더한게 특징이다.

김기민은 "한국 무대에서 전막 발레에 출연한다는 게 기쁘고, 캐스팅이 결정된 이후 박세은과 자주 통화하며 <라 바야데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0년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도 무대를 함께 했던 경험이 있다. 그전인 2009년에는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에서도 주역 데뷔를 함께 한 바 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오누이 같은 사이였다. 박세은이 예원학교에 재학 중일 때 초등생이던 김기민은 "박세은과 2인무를 하고 싶어서 졸졸 따라다녔다"며 "그 당시에는 예원학교에 재학중인 형(김기완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이 누나(박세은)와 춤을 추는게 정말 부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어렸을 때 (박세은의) 기사에서 집념이라는 단어를 읽었고, 발레는 이렇게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깨달았고 저도 따라서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기민은 박세은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 사이가 됐고, 국내 발레단의 여러 무대에 주역으로 데뷔하면서 서로의 성장을 지켜봤다. 2011년에는 김기민이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에, 박세은이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하면서 각자 최정상의 위치에 올랐다.
마린스키발레단의 &lt;라 바야데르&gt;에서 솔로르 역을 맡은 김기민 ⓒ마린스키발레단
특히 김기민에게 <라 바야데르>는 전공이나 다름없다. 마린스키발레단 입단 후 4년만에 수석무용수로 초고속 승급한 데에는 그가 연기한 '솔로르'의 힘이 컸다. '김기민의 솔로르에는 경쟁자가 없다'는 평가도 줄을 잇는다. 김기민은 "수십 번 '솔로르' 역할로 무대에 섰지만 같은 춤을 많이 출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해 항상 배역이 주어질 때마다 연구에 몰두한다"고 말했다. 김기민이 <라 바야데르>에 누구보다 진심이라는 것은 박세은이 더욱 잘 느끼고 있었다.2막의 마지막 장면에서 솔로르가 어떻게 보여져야 할지를 물은 박세은에게 김기민은 즉답을 내리지 않았다고. 박세은은 "이 친구(김기민)는 <라 바야데르>의 모든 버전을 다 해석하고 있고, 본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을 따르려는 것 같아 놀랐다"고 전했다. 박세은에 따르면 김기민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확신하고, 정확하게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무용수다. 라 바야데르에 한해서는 박세은도 김기민에게 많은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김기민은 "28일부터 공연 전까지 총 3번의 리허설이 있는데, 내 파트너가 뭘 원하는지 이해하고 느끼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민은 "(박세은과) 처음 함께 춤춘 곳이 15년 전 국립발레단 무대였고, 경험이 부족한 상황에서 욕심이 지나쳤기에 박세은이 많이 불편했을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당시 '연습벌레'라는 별명을 가졌던 박세은도 김기민의 "한 번 더 연습하자"는 말이 부담스러웠을 정도였다고. 김기민은 "박세은은 타고난 니키아라고 생각된다"며 "이번에는 상대방이 더 돋보일 수 있도록 뒤에서 잘 받쳐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