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신호 위반, 범죄로 볼 수 없어"

법원 "중대과실 단정 못해"
보험급여 환수 취소 판결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냈어도 사고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범죄행위로 볼 만큼 중대한 과실이 아니라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환수고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1년 8월 충남 천안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중 맞은편에서 좌회전하던 차량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A씨는 상해를 입고 3500만원의 보험급여를 받았다. 건보공단은 2023년 6월 “중대한 과실(교통신호 위반)로 인한 범죄행위에 사고 원인이 있다”며 보험급여 전액을 환수하겠다고 고지했다.국민건강보험법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에는 보험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정한다. 다만 대법원 판례는 ‘운전자가 교통신호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야기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국민건강보험급여 제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되고 중과실 여부는 그 사고가 발생한 경위, 운전자의 운전 능력과 교통사고 방지 노력 등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교통신호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대법원 판례에 비춰 중대한 과실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연령, 운전 경력, 사고 장소와 시각 등에 비춰 보면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고가 중대한 과실로 교통신호를 위반해 이 사건 교통사고를 야기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원고가 시야 장애나 순간적인 집중력 저하 또는 판단 착오로 교통신호를 위반해 이 사건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와 다른 전제에서 내린 건보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고 덧붙였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