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아 내팽개친 솔로르…국립발레단의 파격적 '라 바야데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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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재·안수연 간판스타 존재감 확인단도(短刀)를 든 니키아에 겁먹고 도망치는 공주 감자티의 발걸음은 높은 '점프'로 표현됐고(1막), 니키아가 독사에 물려 죽자 연인 솔로르는 공주를 따라 무대 뒷편으로 달아나버렸다(2막). 대단원의 막. 죽은 연인(니키아)의 환영을 본 솔로르가 멍하니 홀로 선 채 공연이 끝난다.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지난달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와 줄거리는 같지만 연출 차이가 또렷했다. 국립발레단은 정기공연 <라 바야데르>를 개막 전날인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언론에 공개했다. 개막 공연의 캐스팅대로 무대와 의상이 완벽히 갖춰진 상태에서 진행됐다.
30일부터 내달 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라 바야데르>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라는 뜻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 공주 감자티의 삼각 관계가 줄거리를 이룬다. 솔로르가 권력 욕심에 국왕의 제안으로 공주와 약혼하던 날, 계략에 빠진 니키아는 꽃바구니 속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러시아 황실에서 탄생한 고전 발레지만 인도의 힌두사원이 배경인지라 무대와 의상, 상체 동작이 기존 발레와는 달라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발레단은 예술감독으로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을 33년 이끌었던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97)의 <라 바야데르>를 채택했다. 이는 그가 2013년 창작한 새로운 버전의 안무로, 국립발레단이 그 해 이 버전을 초연한 바 있다.
지난달 유니버설발레단이 상대적으로 화려한 안무 및 더 많은 무용수의 투입으로 볼거리를 더했다면 국립발레단은 마임에 춤의 요소를 삽입해 작중 인물들의 성격을 보다 입체적으로 연출한 점이 눈에 띄었다. 또한 막과 막 사이, 음악만 흐르던 장면에 주요 인물들이 등장해 앞으로 일어날 이야기를 암시하기도 했다. 죽음에 이른 니키아를 버려두고 줄행랑 치는 솔로르는 다소 충격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국립발레단의 결말은, 유니버설발레단의 결말과 확연히 달랐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서는 니키아와 솔로르가 망령의 세계에서나마 이어지지만 국립발레단 무대에서는 이들의 사랑에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잠시 꿈 속에서 니키아를 만났던 솔로르는, 다시는 니키아를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하며 무대가 마무리된다. 안무자가 상투적인 결말(영혼의 재회)을 거부하고, 솔로르의 복잡한 내면을 표현하고자 한 결과다.<라 바야데르>의 백미는 역시나 3막 '망령들의 군무'였다. 32명의 발레리나가 한명씩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장면. 새하얀 옷, 머리와 팔로 이어지는 얇은 베일은 그들이 이승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장치다. 절제된 아라베스크, 각도기로 잰 듯 그 누구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다리. 균형 감각과 탄탄한 기본기, 예술성을 고려해야하는 무용수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 군무는 '발레 블랑(Ballet Blanc·백색 발레)'으로 손꼽힌다.<라 바야데르>에서도 국립발레단은 수석무용수가 아닌 여러 등급의 무용수들을 주역으로 골고루 기용했다. 솔로르를 연기한 허서명을 제외하고 주역으로 나선 수석무용수는 없었다. 하지만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닷새간 공연 중 조연재(솔리스트)와 안수연(코르 드 발레·군무단원)은 니키아와 감자티를 모두 연기한다. 이들은 앞선 정기 공연에서도 주역으로 서며 간판스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특히 안수연은 올해 초 <백조의 호수>에서 오데뜨/오딜로 깜짝 데뷔한 이래 주역의 길만 걷고 있는 신예다. 이번 무대에는 유럽에서 최정상 무용수로 활약 중인 발레리나 박세은(파리오페라발레단)이 김기민(마린스키발레단)도 참여해 니키아와 솔로르를 연기할 예정이다. 다음달 1,3일로 예정된 김기민과 박세은의 무대는 예매 창구가 열린지 3분만에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는 다음달 3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