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쾌히 "OK"라더니…한동훈·이재명, 회담 늦어지는 이유 [정치 인사이드]

韓·李, 여야 대표 회담 셈법 달라
'1심 선고' 앞둔 이재명, 얻을 것 있지만
한동훈, 내부 교통정리가 더 시급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사진=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차 여야 대표회담을 갖자는데 공감대를 이뤘지만, 물밑 조율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대표회담이 빨라도 11월 중순까지는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표에게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말씀드린다. 제가 전에 행사장에서도 '저번 주 안으로 만나서 이야기하자. 가능하면 그렇게 하자'고 말했는데 비서실장들을 통해 협의하기로 했는데 소식이 없다"며 회담에 응하라고 압박했다.이 대표는 한 대표를 향해 "입장이 난처한 건 이해한다"며 "그런데도 여야의 대표들이 만나서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2차 회담을 미루는 여권 내 분위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른 시일 내에 2차 회담이 이뤄지기는 어렵다는 게 여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야 대표회담'을 대하는 한 대표와 이 대표의 셈법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회담을 통해 얻을 게 많은 쪽은 이재명 대표 측이다. 정치권의 모든 시선이 김건희 여사에게 쏠려 있고, 국민의힘이 이로 인해 내부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야당 대표'로서 존재감을 보여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한 대표와 회동에서 '김건희 특검' 등을 공식 의제로 올리면서 여권 내 분열을 가속할 수도 있다.

이 대표가 오는 11월 위증교사·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1심 선고를 앞둔 점도 그가 회담 개최를 재촉하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이 대표는 여당 대표와의 회담을 통해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위상을 사법부에 한 번 더 보여줄 수도 있다.

민주당 내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는 이 대표의 무죄 선고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모으고 있는데, 이 탄원서에도 이 대표가 유력 대선 주자임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이 대표는 실제로 1심 선고를 앞두고 다양한 인사들과 교류하며 외연 확장 행보를 펼치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도 '보수 원로'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는 최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잇달아 만났다.

반면 한 대표로서는 국민의힘 내부 교통정리를 하는 게 더 시급한 과제다. 여야 대표 회담이 열리면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주요 의제로 올릴 텐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감찰관' 관련 당의 입장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친인척 등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비위 행위를 감찰하는 '특별감찰관' 추천 문제 여부를 의원총회에서 정하기로 한 상태다. 다만 친한계는 공개 의총을, 친윤계는 비공개 의총을 제안하며 내부 갈등이 가라앉지 않았다.일부 여당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한 대표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 또한 한 대표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대표와 한 대표의 만남으로 윤 대통령이 고립되는 그림이 연출될 경우 한 대표에게 애꿎은 비난의 화살이 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한 대표와 이 대표가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2차 회담을 하더라도, 성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양측이 주요 의제로 올리고자 하는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향한 3대 요구를 제시했다.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북한군 러시아 파병 입장표명 △이재명 대표 방탄 행위 중단 등 3대 요구는 2차 회담에서 한 대표가 다루고 싶은 주요 의제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민생'을 고리로 한 대표에게 회담 개최를 채근하는 모양새다. 그는 윤여준 전 장관을 만난 뒤에도 "경제가 너무 어렵고, 국민들이 적대적으로 가는 상황은 정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실제 회담이 성사되면 최우선적 의제로 '김건희 특검'을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여당 관계자는 "대표 회담 일정과 관련해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