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요리 드라마 '더 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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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 드라마 ‘더 베어’
▶▶▶ [관련 리뷰] 천재 셰프, 망한 식당 맡더니..‘단짠단짠 인생담 나왔습니다’
볼만한 사람은 이미 다 봤을지 모르지만, FX 드라마(디즈니 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더 베어’는 한 마디로 격렬한 드라마이다. 폭주하는 기관차 같다. 시카고의 한 샌드위치 가게 ‘더 비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주인공은 카르멘(제레미 알렌 화이트)이고 그는 한때 뉴욕 맨해튼에서 잘 나가는 셰프였지만 결국 이곳까지 흘러왔다. 일종의, 스스로가 선택한 몰락이자 하향화이다. 현재 상황은 형인 마이클(존 번설)이 권총 자살을 했고 ‘더 비프’는 문 닫기 일보 직전이다.
카르멘이 여기 온 건 뉴욕에서의 셰프 생활에 회의를 느껴서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근본적으로 달고 살아 가는 트라우마, 그 신경쇠약 때문이기도 하다. 카르멘은 형 마이클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같은 것을 느끼고 있으며 그걸 극복하지 못하는 한 삶을 올바로 지탱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모인 약 8~9명의 극중 인물은 각양각색이고 다들 나름대로 성격이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코로나19 기간을 견뎠으며 죽은 형 마이클과 가족 같은 관계였고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이 레스토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다. 그러나 너무 개성들이 강해서 도저히 통제가 안 된다. 식당 ‘더 비프’는 한 마디로 아수라장, 개판이다.이런 류의 요리 영화, 혹은 요리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을 보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주방의 문화이다. 수석 셰프는 자신들의 수하 요리사들을 마치 노예처럼 부린다. 온갖 쌍욕을 다하고, 바로 귓등에다 대고 소리를 지르며 모욕을 준다.
자신이 쓰는 칼을 모르고 썼다가는 거의 팔을 자를 정도로 ‘지랄’을 한다. 미치광이에 인간 말종이다. 셰프가 뭐길래, 도대체 요리가 뭐길래, 그래 봐야 한 끼 식사에 불과할 텐데 주방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전쟁에 나간 것처럼, 빗발치는 총알을 맞을 준비를 다 한다.
대대장처럼 굴든 연대장처럼 굴든 사단장처럼 굴든 인격이라도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사람이어야 할 텐데 이놈의 수석 셰프는 마치 잔인한 독재자같이 굴 뿐이다. 다행히 주인공 카르멘은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디즈니 플러스의 시즌 드라마 ‘더 비프’는 그런 의문을 다소 풀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주방이 체계가 잡히지 않으면, 곧 리더쉽이 발휘되지 않으면 맛없는 음식이나 요리를 제공받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뭘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된다. 주방의 시스템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리더와 리더의 원칙이 중요하게 된다. ‘더 비프’의 새로운 리더 카르멘의 역할이 돋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그는 이 망가진 레스토랑, 곧 문을 닫게 될 처지의 식당을 리노베이션 한다. 창문은 깨져 있고 화장실 변기는 터졌으며 툭하면 배선이 나가서 냉동창고와 심지어 냉장고도 쓸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 간의 역할 분담과 위계를 만들어 한 가지 한 가지 문제를 풀어 나간다.
이쯤 되면 드라마 ‘더 베어’는 식당의 얘기를 넘어, 그리고 일개 요리사의 얘기를 넘어, 현대사회를 운영하는 정치학과 사회학의 얘기로 확장된다. 그 매듭과 고리를 꼬거나 푸는 얘기를, 진정으로, 잘 끌어 나간 작품이다. 대본이 최고다. 대사들이 ‘죽인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가 일품이다.에피소드별 극적 긴장감을 돕는 캐릭터는 두 명이다. 일단 형 마이클과 사촌지간이라 불릴 만큼 친한 친구인 리치(에번 모스베크랙)가 있다. 그는 구체제, 구 시스템을 반영하는 인물이다. 리치는 죽은 마이클이 식당을 운영했던 방식을 고집하며 이론보다는 현실과 현장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코로나19를 이 식당이 견딜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레스토랑 뒤 골목에서 그와 마이클이 마약을 ‘유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총을 소지하고 있으며 ‘더 비프’ 앞에 줄을 서는 동네 갱단과도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이다. 카르멘은 이런 리치와 한결같이 말싸움을 벌이지만 그나 리치나 서로를 버리지 못한다.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캐릭터는 시드니(아요 에데비리)이다. 카르멘은 그녀에게 나이는 어리지만, 전체 총괄 운영을 맡긴다. 시드니는 다른 종업원들의 역할을 ‘워칭’하고 동선을 체크하며 식당의 스케줄을 이어나간다. 식당 ‘더 비프’는 시드니 덕에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이 수석 셰프가 되는 일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길 중의 하나가 자신만의 새로운 메뉴,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 인정받는 것이다. 카르멘은 그런 그녀에게 “너는 아직 셰프까지는 아니다’라며 진정시킨다. 그런 둘을 옆에서 지켜보는 리치는 시드니를 비아냥대기 일쑤다. 시드니는 둘에게 ‘태블릿을 사용하는 거나 배우라’며 소리를 지른다. 요즘의 시카고도 서서히 음식점마다 테이블에 태블릿을 놓고 주문하는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시즌1 에피소드 8의 마지막 10분 정도는 이 드라마가 진정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임을 보여 준다. 수백 개의 핫도그와 치킨, 샐러드 등의 주문이 밀려오고 카르멘은 ‘꼭지’가 돈다. 그는 평소와 달리 소리치고, 욕하고, 윽박지르며 주문을 준비한다. 사람들도 그런 그를 보며 ‘꼭지’가 돈다.
그 전 과정을 거의 원 씬 원 테이크로 찍었다. 연출과 촬영, 배우들의 연기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건 연출만 잘해서도, 카메라를 잘 찍기만 해서도, 배우들이 연기만 잘해서도 될 일이 아니다. 이건 일종의 총합의 예술이다. 누구 하나만 잘해서도 안 되며 단지 전체만 잘해서도 안 된다. 근데 그건 실제 주방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요리사들 각자가 맡은 요리의 부분을 잘 수행해야 하지만 결국 결과는 완성된 요리 그 자체가 되게 해야 한다. 결국 정신과 철학이 동일하게 공유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미국이나 한국이나 우리가 모두 느끼는 현저한 결핍은 바로 그 ‘정신성’이다. ‘정신과 의지가 만들어 내는 위대함’이다. ‘더 베어’는 단순하고 그저 그런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시즌을 이어 가며 시청하면서 단단하게 착각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는 지금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경고음과 같은 작품이다. 리더가 중요하고, 리더에겐 철학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며, 대중들은 각자의 자존감을 버리거나 낮추지 않되, 끊임없이 전체와 공동선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그런 진부한 얘기, 다 필요 없다. 결론은 ‘개인의 삶이 전체의 삶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 변증의 쌍곡선을 잇는 정신 철학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드라마 ‘더 베어’가 얘기하는 궁극의 메시지이다. 시카고의 요리사 카르멘이 차라리 미국 대통령을 하면 잘할 것이다. 동의하거나 말거나.
오동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