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성인’의 놀라운 발견 [고두현의 아침 시편]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 마쓰오 바쇼-----------------------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는 일본 에도 시대 초기의 방랑시인입니다. 죽은 지 3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인기가 대단합니다. 아사히신문의 ‘지난 1000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은 누군가’라는 설문 조사에서 6위에 올랐지요. 일본 전역에 그의 시비만 4000개가 넘습니다.

그가 남긴 하이쿠는 2000여 편에 이릅니다. 하이쿠는 5-7-5의 17음으로 된 일본 고유의 단시를 말합니다. 음절 수만 맞추는 게 아니라 기본 작법도 철저히 지키지요. 계절 감각을 나타내는 말을 꼭 넣어야 하고, 첫 구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져야 하며, 반드시 끊어 읽는 맛이 나게 해야 합니다. 짧지만 촌철살인의 지혜와 통찰을 담아낼 수 있는 것도 이런 작법 덕분이다. 특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라는 작품은 번뜩이는 영감과 깊은 성찰을 동시에 주는 절창 중의 절창입니다. 이처럼 짧은 시에 인생의 오묘한 뜻을 ‘번개’처럼 응축해 낸 솜씨라니!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발견이지요.

그의 본명은 무네후사(宗房)입니다. 그런 마흔이 다 되어서 얻은 호 바쇼(芭蕉)로 더 유명하지요. 38세 되던 해 봄에 친구가 보낸 어린 파초(芭蕉)를 심었더니 날로 무성해져 오두막 전체를 덮었습니다. 파초에 둘러싸인 그는 호를 바쇼라 하고 오두막 이름도 바쇼우안(芭蕉庵)이라 했습니다.

‘파초를 옮기는 말’이라는 산문에서 그는 파초를 사랑하게 된 까닭을 ‘무용의 용(無用之用)’으로 설명했습니다. 봉황의 꽁지깃처럼 화려하지만 찢기기 쉽고, 줄기가 굵지만 목재로는 쓸 수 없고, 온갖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넓은 잎이 그늘을 선사해주기에 파초를 사랑한다고 했지요. 그는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여행 중에 보고 느낀 것을 시로 썼습니다. ‘잔나비 울음 듣는 이여’도 그중 하나입니다.

잔나비 울음 듣는 이여
버려진 아이에게 가을바람 부네.
어찌하리오.

이 시는 어느 가을날 강가에 버려져 슬피 우는 세 살 아이를 보고 쓴 것입니다. 혹한을 앞둔 시점, 소맷자락에서 먹을 것을 꺼내 준 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여기에서 원숭이는 단장(斷腸)의 유래가 된 중국 고사 속의 어미 원숭이를 뜻합니다. 환공이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주워 데려가는 동안 어미가 수백 리를 쫓아오다 죽었는데 뱃속을 갈라보니 창자가 끊어져 있었다는 바로 그 얘기이지요. ‘재 속 화롯불’이라는 작품은 친지의 죽음을 추모하며 유가족에게 보낸 조문시입니다.

재 속 화롯불
사그라드네 눈물
끓는 소리.

눈물이 떨어져 화롯불을 꺼뜨리거나, 떨어진 눈물이 그 불 속에서 끓거나, 마음의 불길이 뜨겁게 타오르거나, 화롯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말없이 슬픔을 가누는 모습을 ‘눈물 끊는 소리’로 집약했습니다. 놀라운 경지이지요.

그는 몇 달씩 여행하며 방랑일지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방랑 규칙도 유명합니다.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자지 않는다. 몸에 칼을 지니지 말라.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말라. 육식을 하지 말라. 남이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시를 지어 보이지 말고 요청받았을 때는 결코 거절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거나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글자 하나라도 그대를 가르친 사람에게 감사하라….’ 여행과 은둔을 반복하던 그는 50세에 오사카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죽어서 ‘하이쿠의 성인’이 된 그의 시는 언제 읽어도 새로운 깨우침을 줍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