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공개매수 때 2.5兆 유증 안 알려…주주 피해"

주관사 미래에셋證 현장조사
"중요사항 누락된 부정거래"
중립이던 금감원 칼 빼들어

업계 "최 회장, 자충수 됐다"
▶마켓인사이트 10월 31일 오후 5시 36분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 안내판 모습./사진=임형택 기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 간 팽팽한 경영권 분쟁이 금융감독원의 전격 개입으로 새 국면을 맞았다. 고려아연 측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2조5000억원에 달하는 기습 유상증자를 준비해 놓고도 이를 알리지 않아 주주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중립’이던 금감원 전격 개입

금감원은 31일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주관 업무를 맡은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현장 조사에 나섰다. 고려아연이 일반공모 방식의 유상증자신고서를 제출한 지 하루 만이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증자 사실을 알면서도 공개매수신고서에서 ‘중대한 재무 변동이 없다’고 고의로 알렸다면 중요 사항이 누락된 허위 신고이자 부정 거래”라며 “부정 거래가 성립하면 증권사도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말했다. 최 회장 측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하는 동안 대규모 유상증자를 계획했지만 투자자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고려아연 유상증자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4일부터 실사 작업에 착수했다. 14일은 고려아연이 주당 89만원으로 자사주 공개매수(4~23일)를 한창 진행하던 시점이다. 최 회장 측은 지난 11일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가를 인상하며 제출한 정정 공개매수신고서에 ‘향후 재무구조 변경을 가져오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고려아연 증자 카드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중립 입장을 강조해온 금감원을 움직이게 한 트리거가 된 셈이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최 회장과 고려아연 이사회의 사법 리스크가 더욱 커지면서 분쟁의 전환점이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유증 카드’ 무용지물 될 듯

금감원은 공개매수 과정에서 불공정 거래가 있었는지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최 회장 측과 MBK 연합이 모두 타깃이다. 공개매수 방해 또는 성공 목적으로 인위적 주가 변동 등 시세 조종 및 교란 여부, 공개매수 및 유상증자 정보 공개 전 임직원 등 내부자의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등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집중 조사 중이다.회계 처리 관련 심사도 하고 있다. 충당부채의 미인식 및 지연 인식 여부, 고가 인수 및 현물 배당받은 국내 투자 주식 관련 손상차손 과소 인식 여부 등이 심사 대상이다. 함 부원장은 “회계 처리 기준 위반 정황을 다수 포착했고, 정식 감사 전환 여부를 조속히 결정하겠다”고 했다.

금감원이 강경한 자세로 나오면서 최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내놓은 대규모 유상증자 카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검사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가능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자진 철회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금감원의 신고서 정정 요구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주가 발행되더라도 경영권 방어에 차질이 생긴다. 내년에 발행되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서다.

MBK 연합 지분은 의결권 기준 43.8%로 최 회장 측(40.3%)보다 약 3.5%포인트 많다. 양측 모두 과반을 점하진 못해 남은 유통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국민연금과 기관투자가를 설득해야 한다. 최 회장 측은 이번 증자 사태로 민심을 잃은 만큼 MBK 연합이 유리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증권도 엄중 처벌 예고

금감원은 이날 최근 신한투자증권의 1350억원대 손실 사태에 대해서도 엄중 처벌을 예고했다. 금감원은 신한투자증권 한 직원이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업무 과정에서 본연의 목적과는 관계없는 장내 선물매매에 나섰다가 1357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본 사건을 두고 검사하고 있다.

함 부원장은 “아직 검사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신한투자증권은 내부 직원 간 수직적 통제, 자사 내 리스크·컴플라이언스 관리 부서 등의 수평적 통제 양 측면에서 심대한 문제가 발견됐다”며 “조직적인 설계 운영상의 문제점이 크다고 보여 강한 조치가 따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일탈 행위를 한 직원과 공동행위자 등 개인에 대한 처벌도 매우 강도 높을 것”이라며 “허위 문서 등 거래를 은폐한 방법이 매우 악질적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하며 증권업계 전수조사 가능성도 시사했다.

박종관/차준호/선한결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