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자동차가 공격수라면 수비수는 누굴까, 농업” [서평]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

이주량 지음
세이지
368쪽|2만1000원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주역으로 수출 산업이 꼽힌다. 철강, 화학,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이다. 하지만 그 전에 농업이 있었다. 농업 혁신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풍부한 노동력이 제조업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당신이 모르는 진짜 농업 경제 이야기>를 쓴 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제조업 발전은 농업의 성장이 선행되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책은 농업을 산업과 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농업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는 오해를 깨부순다. 한국 사회가 풍족해지면서 농업의 중요성은 간과되고 있다. 왜 수출 산업처럼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느냐고 타박한다. 농업 대신 부가가치가 더 높은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나온다. 저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산업을 축구에 비유하면 반도체나 자동차는 공격수이고, 농업은 최종 수비수다. 최종 수비수의 임무는 안정적 방어를 통해 공격수의 다득점을 돕는 것이다. 최종 수비수가 공격수처럼 골을 많이 넣겠다고 공만 따라다니면 동네 축구가 된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기적 같은 발전을 이뤘지만 국민들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왜냐하면 농업을 자꾸 반도체나 자동차 같은 산업과 단순 비교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치고 농업을 등한시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농업 강국이다. 미 농무부엔 11만명이 근무한다. 국방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부처다. 싱가포르 정부는 2019년 4월 식품청을 출범했다. 10%대인 식량 자급률을 2030년까지 3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얼마 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싱가포르 정부의 우려는 현실이 됐고, 식량 안보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됐다. 한국은 1962년 공업 발전과 농업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농공 병진 정책’을 채택했다. 그해 설립된 농촌진흥청의 대표적 성과가 1971년 개발한 ‘통일벼’다. 잘 쓰러지지 않고 병에 강하고 면적당 수확량이 많은 벼였다. 1977년 쌀 생산량이 600만t을 넘어서며 식량 자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통일벼는 단점이 많았다. 7~8년 동안만 재배됐다. 통일벼 개발은 한국이 새로운 벼의 품종을 연구·개발하는 노하우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품종 개량 기술은 다른 농작물에도 활용되며 한국 농업 발전에 기여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한국 딸기가 그런 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생산액이 3000억원에 불과했다. 품종도 대부분 일본산이었다. 지금은 설향, 매향, 금실, 싼타 등 국산 품종이 96%를 넘는다. 2023년 기준 딸기 생산액은 1조4000억원으로 쌀 다음으로 많다. 2021년 기준 딸기 수출액은 7100만달러(약 930억원)으로 15년 사이 12배 증가했다.

저자는 한국 딸기도 선키스트 오렌지, 뉴질랜드 제스프리 키위처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볼 만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딸기 농가가 연합해 조직화하고 하나의 공동 브랜드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딸기의 수익성이 워낙 좋아, 조직화 대신 개별 농가 차원에서 첨단화와 규모화를 도모해 왔다. 저자는 “조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격 협상력이나 물량 확보에서 불리해지기 때문에 본격적인 수출 작목으로 육성하는 데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농업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주는 책이다. 옛날 어딘가의 농촌 풍경에 멈춰 있는 우리 머릿속의 농업과 전혀 다른 세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