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239건 분석해보니…'한국식 M&A 정착' [M&A 30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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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30년史"계약금이 있는 M&A가 절반을 넘고, 미공개부채 진술보장은 77%에 달합니다. 한국 인수합병(M&A)만의 독특한 관행이 정착되고 있습니다."
② "한국식 M&A의 특징"
거래 절반이 계약금 받고, 77%가 미공개부채 보장
1000억 이상 대형거래, 글로벌 스탠다드 적극 도입
진술보장보험 15%·손해배상한도 78% 설정
31일 법무법인 광장이 개최한 '제10회 M&A 포럼'에서 윤용준·박경균·강정해 변호사가 최근 3년간(2021년 7월~2024년 6월) M&A 계약서 239건을 분석한 결과다. 광장이 자문하거나 전자공시된 거래 중 계약서 내용이 확인 가능한 건들이 대상이다. 분석대상 중 상장사는 23%, 비상장사는 77%를 차지했다.
계약금 있는 거래 51%..."한국식 M&A의 특징"
분석 결과 전체 거래의 51%가 계약금을 수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매수인이 외국인인 경우 이 비율은 33%로 크게 낮아져 '계약금'이 한국 특유의 관행임을 보여준다.
박경균 변호사는 "계약금 규모는 매매대금의 10%가 절반을 차지했다"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계약금 보호를 위한 담보조치로, 62%가 이를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담보조치는 계좌질권 설정(59%)이 가장 많았고, 에스크로 계좌 설정(24%)이 뒤를 이었다. 계약금 이자는 81%가 매도인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계약금을 매매대금의 일부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임을 보여준다.
한미간 정산방식 '큰 차이'
거래종결 후 매매대금 정산 규정에서는 한국과 미국 간 큰 차이를 보였다. 국내는 79%가 별도 정산 규정을 두지 않은 반면, 미국은 92%가 정산 규정을 두고 있다.
미국의 경우 운전자본·순부채·현금자산 정산방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순자산 정산 방식의 비율은 매우 낮다. 반면, 한국은 정산 규정이 있는 경우(21%)에도 순자산·순부채·현금자산 정산방식 외에 매출이나 영업이익 연동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진술보장 항목, '미공개부채' '법령준수' 70% 넘어
진술보장 항목에서는 미공개부채와 법령준수가 핵심을 이뤘다. 윤용준 변호사는 "80% 이상의 계약에서 기본적인 진술보장을 규정하고 있으며, 특히 미공개부채(77%)와 법령준수(75%) 관련 진술보장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미공개부채의 범위는 치열한 협상 대상이다. 강정해 변호사는 "우발채무를 포함한 '어떠한 부채도 없다'는 광의의 규정과 '재무상태표상 부채가 없다'는 협의의 규정 중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매수인에게 유리한 전자가 60%로 우세했다"고 밝혔다.
법령준수 진술보장의 경우, 법령준수 기간이 쟁점이다. '현재 법령을 준수하고 있다'로 한정할 것인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법령을 준수해왔다'로 넓게 규정할 것인지가 문제된다. 분석 결과 현재 및 과거를 포함하는 경우가 55%로 약간 많았다.
정교해지는 손해배상 협상
M&A계약서의 '숨은 조항'으로 불리는 손해배상 협상이 더욱 정교화되고 있다. 손해배상은 인수 후 발견되는 예기치 못한 위험을 누가, 얼마나, 어떻게 부담할지 결정하는 핵심 조항이다.
전통적으로 매수인의 손해액은 '대상회사 손해액×인수 지분율'로 계산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영권 거래의 특성을 고려해 지분율과 무관하게 전액 배상하는 계약도 등장했다. 다만 아직은 56%가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고 법원 판단에 맡기고 있다.
일반적인 진술보장 위반에 대한 배상청구 기간은 1년(22%), 18개월(17%), 2년(14%) 순이었다. 다만 회사 설립이나 주식 소유권 같은 근본적 사항은 57%가 영구적 책임을, 세금이나 노동 문제는 법정 소멸시효에 준해 별도로 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장치도 정교화되고 있다. 일정 금액 이하는 배상하지 않는 '드 미니미스(De Minimis)' 조항을 49%가 도입했다. 손해기준금액(Basket)은 51%가, 배상한도(Cap)는 58%가 채택했다. 특히 배상한도는 매매대금의 10% 이하로 정하는 경우가 70%에 달했다.
매수인이 문제를 알고도 계약을 체결한 뒤 추후 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막는 안티샌드배깅(Anti-sandbagging) 조항도 새로운 협상 쟁점으로 부상했다. 현재 20%의 계약에만 도입됐으나, 대법원이 명시적 규정이 없으면 매수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고 판시해 도입 여부를 두고 치열한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
대형거래일수록 엄격한 기준 적용
1000억원 이상 대형거래는 손해배상·기업결합 조항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는 경향을 보였다.
박경균 변호사는 "1000억원 이상 대형거래의 경우 손해배상 책임제한이나 기업결합 승인 관련 조항에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손해배상 한도 설정('캡') 조항의 경우 일반 거래는 58%만 규정한 반면, 1000억원 이상 거래는 78%가 이를 규정했다. 금액은 매매대금의 10%(29%)나 5%(21%)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소한 손해 배상을 제한하는 '드 미니미스' 조항도 대형거래에서는 62%가 채택해 일반거래(49%)보다 높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 심사 관련 조항도 대형거래에서 더욱 엄격했다. 전체적으로는 무조건적 기업결합 승인 의무(17%)와 조건부 승인 수용 의무(20%)의 비중이 낮았으나, 1000억원 이상 거래에서는 각각 24%, 37%로 크게 증가했다.
대형거래, 글로벌 스탠다드로
대형거래일수록 글로벌 기준 도입 경향이 두드러졌다. 진술보장보험(W&I Insurance) 가입도 늘고 있다. 전체 거래의 7%가 가입했으며, 1000억원 이상 대형 거래는 15%가 가입했다. 보험료는 매수인이 부담(74%)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한국은 미국(50% 이상 가입)에 비해 아직 보험 활용도가 낮은 편이다.
적정공개(Fairly Disclosed) 개념 도입도 증가하고 있다. 이는 실사자료나 공시자료를 통해 이미 공개된 사항을 진술보장의 예외로 인정하는 것인데, 대형거래의 경우 54%가 이를 채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강정해 변호사는 "대형거래일수록 거래종결의 확실성을 높이고 세부사항까지 꼼꼼히 협상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와 한국적 특색이 조화를 이루는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