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지고나면 트렌치코트 입어줘야지, 파리든 서울이든

[arte] 정연아의 프렌치 시크

파리지엥의 필수품 '트렌치코트'
가을, 파리에서는 트렌치코트를 입어야 한다

트렌치코트는 군복에서 시작되었다
고무로 코팅된 방수용 코트에서
버버리코트로 불리기까지...

형사와 탐정, 마피아 그리고
낭만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여주인공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

군사용 손수건, 에르메스 스카프로
파리지엔 스타일 À la parisienne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리고 멋진 스카프를 두른 파리지엥들은 단풍이 물든 튈르리 공원에서 가을 햇빛을 즐기기 위해 산책하곤 한다. 춥고 습한 파리의 가을을 잘 나기 위해서 트렌치코트는 파리지엥들에게 필수품이다.
디자이너 인플루언서인 쟌 다마스(Jeanne Damas)는 몸에 꼭 맞는 트렌치코트와 블랙 스웨터에 청바지 그리고 블랙 세무가죽 앵클부츠로 멋진 파리지엔 데일리룩을 보여준다. 파리의 보보(BoBo, Bourgeois-boheme의 줄임말)들이 최애하는 트렌치코트는 주말과 주 중, 낮과 밤, 어느 때나 입을 수 있고 바지, 치마, 클래식 정장, 캐주얼 등 모든 아웃핏에 잘 어울린다. 후드 스웨터와 조깅 팬츠에 겹쳐 입으면 트렌디하고 편안한 아웃핏을 연출할 수도 있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인플루언서 쟌 다마스. / 사진출처. ©Collage Vintage
군복에서 유래된 옷들

프랑스 남성복 브랜드에서 13년간 몸 담으며, 매년 두 차례씩 피렌체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워모(Pitti Uomo)에 가곤 했다. 새로운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이곳에서 매 시즌 빠지지 않았던 것이 바로 밀리터리 룩이었다.2차 세계대전 미국 해군들이 입던 흰색 티셔츠, 부상당한 영국 군인들이 침대에서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카디건 스웨터, 폭격기 조종사들이 고도에서 추위를 덜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파일럿 점퍼 외에도 군복에서 유래된 것엔 파카, 트렌치코트, 더플코트, 카고 팬츠, 에르메스의 프린트 스카프가 있다.

트렌치코트 or 버버리코트

군복에서 유래된 대표적인 옷 중 하나인 트렌치코트. 트렌치코트는 1820년대 초 스코틀랜드의 화학자이자 발명가인 찰스 매킨토시(Charles Macintosh)와 영국의 발명가 토머스 핸콕(Thomas Hancock)이 고무 코팅 방수 코트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이 트렌치코트는 방수 효과는 뛰어났지만, 고무코팅이 너무 무거워 활동에 어려움을 주었다.그 후 1853년에 영국 브랜드 아쿠아스큐텀(Aquascutum 라틴어 '물'과 '방패')이 방수 기능을 개선하여 생산하였고 영국 브랜드 버버리(Burberry) 창업주인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는 트렌치코트를 최초로 상업화하여 버버리코트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1879년에 버버리는 방수와 방풍 기능이 개선된 신소재인 개버딘을 출시하고 1890년대에 가벼운 개버딘 원단으로 만든 레인코트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탐험가, 비행사 등 모험을 좋아하는 영국 신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아쿠아스투룸의 방수 군용 코트 광고(1916)와 유럽 연합군이 입는 방수성 높고 가벼운 Burberry 트렌치코트 광고(1917)
1차 세계 대전에 병사들은 춥고 습한 땅속의 참호(Trench)에서 4년간 긴 전쟁을 치렀다. 그 참호 속에서 유럽 연합군들은 아쿠아스투룸과 버버리에서 만든 트렌치코트를 착용했다. 트렌치코트라는 이름은 바로 이 트렌치(Trench 참호)에서 온 것이다.
참호(Trench)에 숨어 전투를 기다리는 군인들(1915) / 사진출처. ©Museum of the Great War
트렌치코트 입은 남자들 – 형사의 유니폼

영화 속 배우들 덕분에 트렌치코트는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특히 드라마 <형사 콜롬보>와 영화 <핑크 팬더> 덕에 트렌치코트는 형사와 탐정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한편 트렌치코트는 마피아나 갱스터 같은 악당들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프랑스 영화 <사무라이-고독>에서 알랭 들롱은 중절모자와 트렌치코트를 입고 냉정한 살인 청부 업자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영화 속 트렌치코트. 트렌치코트는 형사와 탐정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마피아나 갱스터의 것이기도 했다.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트렌치코트 입은 여자들 - 낭만적 장면의 주인공

트렌치코트는 영화 속에서 운명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을 불러일으켜 주기도 한다. 1964년 칸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받은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에서 카트린 드뇌브는 우산을 파는 아가씨로 트렌치코트와 파란 스카프를 두르고 로맨틱한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바베트 전쟁터에 가다>에서 트렌치코트를 단정하게 입고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브리지트 바르도는 매력적인 스파이로 탄생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어린 아들을 기다리는 메릴 스트립이 걸친 트렌치코트는 슬프고도 낭만적인 모습을,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입은 트렌치코트는 로망의 절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 배우들은 낭만적인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 사진출처. IMDb
에르메스 스카프의 원조, 군사 교육용 손수건

1차 세계 대전 중 대부분의 군인은 문맹이었기 때문에 총기 해체, 기병대 지침, 사물 정리, 부상자 구조 등에 필요한 지침을 사각 손수건에 삽화로 인쇄하여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군사 교육용 손수건은 도시 계획 또는 철도 선을 인쇄하여 정보성으로 활용하기도 했고, 작은 부상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인쇄하여 '주머니 안의 의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1937년부터는 군인이 되려면 글을 읽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군사 교육용 손수건은 사용 설명서 책자로 대체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에르메스는 군사 교육용 손수건에서 영감을 얻어 1937년 첫 번째 에르메스 스카프를 만들었고, 현재 모두가 선망하는 럭셔리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70, 90, 140cm 크기의 정사각형 스카프로 까레(Carré 불어로 정사각형)라고 불리고 그로 인하여 '에르메스 까레'라는 패션 용어가 생겨났다.
군사 교육용 손수건. 샤스포 소총 모델 1866 의 분해 및 재조립 설명과 병사 소지품 정리 방법이 인쇄되어있다.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트렌치코트는 길이와 디테일이 변화되고, 레인코트로의 기능 없이 가죽이나 신소재 원단으로 바뀌고 있지만, 현대인들의 사랑을 받는 패션 아이템으로 확고히 자리하고 있다. 더 추워지기 전, 트렌치코트에 멋진 스카프 목에 두르고 튈르리 공원 산책 한번 해볼까?

정연아 패션&라이프스타일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