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증 '날짜 실수'라는 고려아연…금감원 "해명 미흡" [금융당국 포커스]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기간엔 유증 실사 없었다…날짜 잘못 기재"

금감원 "해명 수용 어렵다"
"2조원 규모 증자, 4일 만에 결정했나"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안내판 모습./사진=임형택 기자
경영권 분쟁 중 자사주 매입 기간에 대규모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를 진행했다고 당초 밝혔던 고려아연이 이번엔 '날짜를 착오 기재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관련 부정거래 가능성 조사에 나선 금융감독원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10월14일 시작한 실사, 유상증자 실사와는 별개”

1일 고려아연은 입장문을 통해 “회사가 일반공모 증자를 검토한 것은 지난달 23일 자기주식 공개매수 종료 이후”라며 “실사보고서에 10월14일부터라고 기재된 것은 착오로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4~23일 자사주 공개매수를 벌였다. 이후 일주일만인 지난달 30일엔 약 일주일만에 2조5000억원 규모 '기습 유상증자'를 발표해 시장의 논란을 샀다. 고려아연은 당시 증권신고서를 통해 미래에셋증권이 지난달 14일부터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를 진행했다고 기재했다.

고려아연의 이날 주장은 지난달 14일 시작한 실사는 유상증자를 위한 실사와는 별개의 일이었다는 것이 골자다. 지난달 14일부터 미래에셋증권이 한 일은 자사주 공개매수에 따른 차입금 처리를 위한 부채조달 실사였을 뿐이고, 당시 결과를 이후 유상증자 실사에도 활용하면서 신고서에 착오 기재가 됐다는 얘기다.

고려아연은 “투자자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한 점에 대해 양해 말씀을 드린다”며 “실제 사실관계를 당국과 시장에 정확하고 성실하게 설명해 논란을 적극 해소할 것”이라고 했다.

금감원 “4영업일만에 대규모 유상증자?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워”

금융감독원은 이같은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해명을 그대로 믿기도 어렵고, 설령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대로 문제가 큰 일”이라고 했다.

일단 대규모 유상증자를 위한 의사결정부터 사무집행까지가 단기간에 이뤄질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고려아연의 해명대로라면 이 회사는 지난달 23일 자사주 매입 기간이 종료된 뒤에야 유상증자 논의에 돌입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 회사가 유상증자를 위해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시점은 지난달 30일 오전10시다. 금감원 관계자는 “'3% 제한' 등 각종 장치를 포함한 2조5000억원짜리 유상증자 논의와 검토, 실사, 의사결정, 신고서 작성 등이 만 4영업일여만에 전부 이뤄졌다는 얘기”라며 “사전 준비 계획이 없이 이정도 규모 일이 단기간에 한번에 이뤄졌다고는 현실적으로 믿기 어렵다”고 했다.

금감원 “사실이라도 졸속처리 자인한 것…투자자 보호 고민했겠나”

실제 단기간 내에 유상증자 관련 모든 업무를 마쳤다 해도 문제라는 게 금감원의 시각이다. 투자자 보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졸속처리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하는 회사(고려아연)와 모집주선인인 증권사(미래에셋증권) 모두 증권신고서에 충분한 내용이 기재됐는지, 가격과 할인율은 적정한지, 투자자들에게 미칠 영향은 어떤지 등을 폭넓게 고민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며 “이런 작업을 단 며칠만에 완료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형식 요건만 맞춰서 제출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의사결정권자의 일방적인 지시로만 이뤄진 일이라면 소요 시일을 확 줄일 수는 있었을 것”이라며 “이같은 경우엔 기존·신규 주주를 고려하지 않은 채 유상증자 완료 자체만을 목표로 삼아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2조원이 넘는 유상증자 결정이 일주일만에 이뤄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통상 유상증자는 기업이 증권사와 총액·잔액인수 중 어느 방식으로 진행할지, 이에 따른 수수료는 얼마가 될지 등을 협의해 이뤄진다”며 “다른 사무를 제하더라도 이 협의에만 며칠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고려아연 '오해 설명하겠다' vs 금감원 '오해가 아니라 의혹'

이날 고려아연은 "오해 해소를 위해 당국과 시장에 성실하게 설명하고, 논란을 적극 해소할 것"이라고 입장문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날 고려아연의 해명이 금융감독당국의 조사거리만 늘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해명대로라면 고려아연은 자사주 미래에셋증권의 부채조달 실사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시 필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리파이낸싱 등을 하려 했다면 이 또한 투자자들에게 알릴 만한 사안"이라며 "공개매수할 때 신고서에 그같은 사항도 기재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주요한 증권신고서에 누락·오기한 내용이 많다면 그 또한 문제"라며 "이러나 저러나 모두 해명이 되지 않으니 더이상 말장난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이어 "자본시장의 신뢰를 많이 상실한 부분에 대해 고려아연이 투자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할 수 있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익환/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