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이 부끄러우면 안돼"…오사카 방적왕의 고국 사랑

Zoom In - 주일대사관 '서갑호의 날' 기념식

일제강점기 日 건너가 자수성가
한때 현지서 소득세 가장 많이 내
1962년 대사관 부지·건물 기증
고국에도 투자…방림방적 설립
일본 도쿄 주일대사관에서 1일 열린 ‘서갑호의 날’ 기념식에서 박철희 주일대사(앞줄 왼쪽 세 번째)와 고(故) 서갑호 사마모토방적 회장 가족 대표 등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일규 특파원
“한국과 일본의 발전과 관계 개선에 힘쓴 증조할아버지의 업적을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바랍니다.”

재일동포 기업인 고(故) 서갑호 사카모토방적 회장(1915~1976·사진)의 증손녀 사카모토 안주(16)는 1일 “증조할아버지의 애국심을 기억해 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주일대사관이 이날 도쿄 한국대사관에서 연 ‘서갑호의 날’ 기념식에서다. 주일대사관은 1962년 11월 1일 현 대사관 부지와 건물을 한국 정부에 기증한 서 회장을 기리기 위해 이날을 대사관 공식 기념일로 지정하고, 매년 고인을 기념하기로 했다.

울산에서 태어난 서 회장은 14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했다. 사카모토방적 등 섬유회사를 세웠고 ‘오사카 방적왕’으로 불릴 정도로 부를 일궈 한때 일본에서 소득세를 가장 많이 내는 사업가로 성장했다. 1963년엔 한국 경제개발계획에 맞춰 해외 동포로는 처음으로 고국에 거액의 외자를 투자해 방림방적을 설립했다. 1973년 윤성방적까지 세우며 한국 섬유산업 발전과 수출입국의 초석을 놓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 회장은 도쿄 중심지 미나미아자부에 있는 현 대사관 부지 및 건물도 기증하며 남다른 고국애를 보였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개설된 주일한국대표부는 연합군이 제공한 사무실을 쓰다 1951년 평화조약 체결 이후 임차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예산 부족으로 갈 곳이 없었다. 국가적 망신살이 뻗칠 일을 해결한 이가 서 회장이다. 일본 귀족인 마쓰가타 가문이 소유하던 현 대사관 부지와 건물이 매물로 나오자 4200만엔을 들여 매입, 한국 정부에 무상 대여했다. 매입을 위해 빌린 돈을 모두 갚은 뒤 정식 기증했다. “조국이 부끄러우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서 회장은 국민 교육에도 열성을 기울였다. 재일한국인 교육을 위해 금강교육재단을 설립, 한국 정부에 기증했다. 1973년엔 동명상업고를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근로자에게 무상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조국 근대화는 물론 한·일 외교사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976년 타계하자 정부는 국민훈장 동백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박철희 주일대사는 “서갑호의 날 지정을 계기로 미래 세대가 그의 숭고한 정신과 동포들의 애국심을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