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소규모 다자외교' 협력체 구축…트럼프는 '고립주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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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세계 질서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 중심의 서방 동맹 체제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동맹국에 방위비 등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한국을 비롯해 대만 필리핀 유럽 등 동맹국은 미국의 잇단 ‘계산서’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 체제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美 대선 D-3 (4) 재편되는 동맹 체제
해리스, 오커스·파이브아이즈 등
바이든 정부 소다자 협의체 계승
'팍스 아메리카나' 리더십 유지
트럼프는 고립주의 기조 고수
동맹에 방위비 분담 요구 강화
北·러시아와 직접 대화 나설 수도
○해리스, 소다자 동맹 유지
미국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예전처럼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데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동맹의 비용’은 지금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다만 양당의 접근법은 크게 다르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소다자(minilateral) 협력(다자 협력 틀에서 특정 목표에 초점을 맞춘 소수 국가 간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는 방향의 정책을 추구했다.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면서도 동맹국과 비용을 분담할 수 있는 체제를 고심한 결과다.
미국·영국·호주 간 군사 동맹 오커스(AUKUS), 쿼드(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파이브아이즈(미국 등 5개국 간 기밀 정보 동맹체)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8월 한·미·일 정상이 안보 문제 협력에 합의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도 소다자 협력의 일환이다.다만 한국은 각 협력 체제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은 호주, 캐나다, 영국 등과 달리 협력 체제를 주도하고 있지 않다. 해리스 부통령이 당선되면 한국에도 일정한 역할과 그에 상응하는 비용 지출을 요구할 수 있다.
워싱턴DC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윌리엄 추 일본 담당 연구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는 다양한 도발자가 있다”며 “한국도 비용이 얼마인지 따지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역 안보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맡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은 반도체 등 서방이 직면한 경제 안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이런 분야에서 협력을 심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 주장도 이와 비슷한 소다자 협력 아이디어지만, 국가 간 핵심 안보 의제가 서로 달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워싱턴DC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거론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딜메이커’ 트럼프 기대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특유의 고립주의적 정책 기조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이미 유세 과정에서 한국, 독일, 대만, NATO 등을 상대로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에서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비용 부담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 석좌는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쉬운 승리를 좋아한다”며 “그는 김정은의 탄도 미사일, 초음속 미사일, 전술 핵무기 등 방대한 무기고를 무장 해제하지 않고도 북한의 핵 위협에 승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겉으로는 성과를 냈다고 주장할 테지만, 실제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먼 ‘겉핥기식 해법’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김현욱 세종연구소장도 “느슨한 비핵화 해결책은 오히려 한국에 잠재 위험 요소”라고 말했다. 어설픈 합의 후 대북 제재 수위를 낮추면 오히려 위험이 커질 수 있단 뜻이다.
한국은 방위비 인상 압박과 대북 문제에서 ‘한국 패싱’ 문제를 한꺼번에 겪게 될 처지에 놓였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면 한국으로서는 대북 방위력이 약화할 것”이라며 “방위비 부담, 중국과의 관계 설정을 포함해 삼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했다.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그가 겉으로 말하는 만큼 불확실성이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장은 최근 공개한 신간 <전쟁>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최근 조 대사와 만나 “트럼프 2기는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딜메이커’인 트럼프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는 방위비 증액 등 몇 가지 사안에 한국이 합의해 준다면 한·미 동맹 자체를 크게 흔들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동현/김세민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