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한국 떠나는 게 낫지"…줄줄이 '초비상' 걸렸다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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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대기업 10.2%·中企 5.2% 인상
또 기업만 전기요금 인상.."차라리 공장 해외로 옮긴다"
최근 4년간 기업용 전기료 70% 이상 껑충
미국 텍사스보다 두 배 비싸
철강·정유·화학社 타격 심해

최근 들어 글로벌 경쟁에서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는 삼성전자로서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일 텐데요. 내년부터는 전기요금으로만 3800억원을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가 기업용 전기요금만 10% 올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기업용 전기요금만 올렸을까요. 요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고객을 최소화하면서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게 한전의 설명입니다. 기업 고객은 한전 전체 고객의 1.7%(약 44만 개)에 불과하지만 전체 전력의 53.2%를 사용합니다. 특히 대기업은 전체의 0.1%에 불과하지만 전력 사용량은 48.1%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악'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경기 둔화와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중국의 저가 공세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까지 떠안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철강,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전기 사용량이 많은 국가 기간산업이 더 큰 부담을 안았습니다.
정부와 한전이 전기요금을 올린 것은 작년 11월 이후 1년 만입니다. 작년 11월에도 '서민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대기업의 전기요금만 4.9% 올렸습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1년도 안 돼 전기요금이 또 오른 것입니다.
매출 규모는 국내 10위지만 지난해 지불한 전기요금은 1조84억 원으로 3위입니다. 국내 최대 제철소인 포스코가 지난해 5028억 원의 전기료를 낸 것에 비하면 두 배 많은 전기료를 냈습니다.
포스코가 용광로(고로)를 주로 사용하는 반면 현대제철은 폐철인 철스크랩을 전기로 녹여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전기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전기로 11기를 보유한 현대제철은 원가에서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10% 이상)이 가장 높은 대기업 중 하나입니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현대제철은 내년에 1166억원의 전기료를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1538억 원)의 75.8%에 해당하는 돈을 전기료로 뿌려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미국에 전기로 공장 건설을 검토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국내 전기값의 급격한 인상”이라며 “미국의 높은 인건비를 감안해도 미국에서 사업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년째 적자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전기료 인상에 한숨을 짓고 있습니다. 올해 1862억원 영업적자가 예상되는 LG디스플레이는 앞으로 연간 전기료를 934억 원(지난해 8075억 원→9009억 원) 더 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용 전기료를 동결한 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대형 제조업체의 산업용 전기료(300㎾ 이상)는 ㎾h 당 94.3원이었습니다. 이후 여덟 차례나 산업용 전기료가 올라 4년간 70% 이상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는 35.9%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h 당 전기요금 역시 가정용이 149.8원으로 대기업(181.5원)보다 낮습니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기요금이 OECD 하위권이라지만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나라인 미국과 대만보다 높습니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 요금은 ㎾h 당 179.5원으로, 지난해 기준 미국 전역의 평균 전기료(112원)보다 60.3% 비쌉니다. 한국 기업이 여럿 진출한 텍사스주(77.6원)와 조지아주(83.4원)에 비하면 두 배 이상입니다.
국내에서 전기료를 가장 많이 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송배전망 비용까지 자체 부담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발전소에서 전기를 제대로 끌어오지 못해 선로를 땅에 묻는 지중화 작업에만 수천억 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도 전력 여유가 있는 충남 태안에서 용인까지 송전망을 구축하는 방안을 논의 중입니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도 가속화할 전망입니다. 낮은 전기료는 직접 보조금과 함께 미국이 해외 기업을 유치할 때 쓰는 핵심 카드가 됐습니다. 전기료가 기업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되자 유럽도 전기료 인하에 나섰습니다.
독일이 대표적입니다. 치솟는 전기료(㎾h 당 370.3원)에 제조업체들이 떠나자 독일 정부는 지난해 11월 전기료에 부과되는 세금을 97% 감면하기로 했습니다. 높은 법인세율과 과도한 규제에 더해 지난 4년간 70% 넘게 오른 전기료는 국내 기업의 ‘탈(脫)한국’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동결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실 게 아닙니다. 부채가 203조 원인 한전은 매일 이자로만 122억 원을 물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전은 막대한 규모의 한전채 등을 발행해 버티고 있습니다.
공기업인 한전의 비용 부담은 결국 정부 재정, 즉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지만 세금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조삼모사일 수 있는 셈입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산업용 전기를 쓰는 대기업의 수출 물가가 일부 영향을 받지만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3~1.4% 정도이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류성원 한국경제인협회 산업혁신팀장은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자동차, 휴대폰, TV 등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를 간접적으로 올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5% 인상되면 소비자물가지수가 0.26% 오릅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