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국제중재에선 득보다 실 유념해야"

게리 본 윌머헤일 국제중재그룹장 인터뷰

법원 제출 자료에도 '환각' 현상
"기술은 도구일 뿐, 본질은 전문성"
한국 중재 시장, 6E 강점으로 성장
지난달 30일 열린 ‘제13회 아시아·태평양 ADR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게리 본 윌머헤일 국제중재그룹장. 사진=대한상사중재원
"문서 공개 등의 업무는 인공지능(AI)이 저년차 변호사의 수준을 대체할 정도로 성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AI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개리 본 윌머헤일 법률사무소의 국제중재그룹장은 지난달 3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AI 시대 중재 시장의 변화를 전망했다. 그는 이날 열린 '제13회 아시아·태평양 ADR(대체적분쟁해결수단)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본 그룹장은 AI가 중재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면서도, "AI의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으로 인한 리스크도 있어 중재 당사자의 동의 없는 AI 활용은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코로나19 당시 줌(Zoom)을 통한 원격 심리가 활성화되면서 심리 장소의 한계를 뛰어넘는 효율적인 환경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미 미국에서는 로펌이 법원에 제출한 사건 내용이 AI의 환각으로 밝혀져 곤욕을 겪은 사례가 있다"며 AI 활용의 양면성을 지적했다.

"중재인 입장에서도 AI를 활용해 판정을 내리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서면으로 소통하고 다투는 비중이 큰 중재에서는 AI의 득보다는 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성장하는 한국의 중재 역량


"한국의 중재 역량은 지난 20년간 한국 기업과 동반 성장했다"고 평가한 본 그룹장은 675건의 중재 사건을 변호하고 ICC(국제상공회의소)의 대형 사건 4건을 수행한 국제중재 업계의 최고 권위자다.

특히 한국 기업의 중재지 선택에 대해 "한국 기업이 지리적·시간적 장점을 뒤로 하고 런던이나 뉴욕에 나갈 이유는 없다"며 "필요하다면 외국 출신 중재인을 선임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싱가포르 국제중재센터(SIAC) 중재법원 의장을 지낸 그는 "싱가포르는 1990년대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아시아의 중요한 분쟁 해결 허브로 떠 올랐다"며 "해외 변호사 유치와 전문 중재 법원 설립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SIAC는 2020년 연간 중재 사건이 사상 처음으로 1000건을 넘어섰다.

중재의 6가지 강점과 미래 전망


본 그룹장은 국제중재의 장점을 '6E'로 정리했다. 소송보다 △전문적이고(Expert) △신속하고(Expeditious) △효율적이며(Efficient) △공정하고(Even-handed) △이행력이 있고(Enforceable) △전자적 방식으로 가능(Electronic)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은 빠르고 예측할 수 있는 분쟁 해결을 원한다"며 "6E는 기업의 중재 업계 요구사항과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자적 방식의 도입은 코로나19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러 국제법 교과서의 저자이기도 한 본 그룹장은 예비 중재 변호사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성실함·창의성·유연성·결단력을 두루 갖춰야 한다"며 "헬스장에서 한가지 운동만 하지 않듯 훌륭한 중재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역량을 고루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특히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술을 두려워하지 말되, 맹신하지도 말아야 한다"며 "결국 기술은 도구일 뿐, 본질은 법률가로서의 전문성"이라고 역설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