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인재 전쟁에서 뒤처진 인텔, 재도약할 수 있을까

권기범 텍사스A&M 커머스대 인적자원개발학부 교수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인텔의 주가가 연초 대비 반토막 났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산업 지원 법안인 칩스법 등 여러 지원책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반등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윈·텔 동맹’을 결성하며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시장을 호령했던 영광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 가는 형세다.

인텔 위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전임 최고경영자(CEO)들의 인재경영 실패가 거론된다. 2010년대 들어 인텔은 엔지니어링보다 재무를 우선시하며, 비용 절감 명목으로 핵심 인재를 포함한 대규모 인력 정리해고를 단행하고는 했다. 이로 인해 인텔의 혁신 역량이 크게 약화됐고, 떠나간 엔지니어들은 경쟁사로 자리를 옮겨 인텔에 치명타를 입혔다.

고객 가치 경영의 부재 역시 위기를 가중했다. 팻 겔싱어 현 CEO는 2021년 취임 이후 파운드리 사업에 큰 베팅을 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력에서의 한계뿐만 아니라, 기존 인텔의 조직문화와 파운드리 사업의 요구 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며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종합 반도체 기업의 엔지니어들은 기술 혁신을 통해 시장과 고객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이 중요하지만, 반도체를 수탁생산하는 파운드리는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고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를 모두 성공시킨 기업이 없다는 사실은 이 두 사업이 요구하는 조직문화 DNA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보여준다.

인텔의 장래가 어두운 이유는 인재 확보 전쟁에서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분야 인재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쟁사들은 높은 연봉과 RSU(제한 주식 보상) 같은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며 인재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직자들에게 급여, 주식, 보너스 정보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급여 비교 사이트(Levels.fyi)에 따르면, 인텔 엔지니어의 평균 연봉은 다른 빅테크 기업과 비교해 경쟁력이 떨어진다.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AI 인재 전쟁에 대해 전례 없이 ‘미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시장은 AI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차별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AI 인재는 극소수에 불과해 이들에게는 부와 경력을 쌓을 기회가 넘쳐난다. 반면, AI 관련 글로벌 비즈니스 밸류체인에서 주도권을 잃은 인텔은 인재 영입은 둘째치고, 떠나는 인재를 붙잡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제이 바니 유타대 교수는 1991년 ‘자원 기반 이론’을 주창하며, 기업의 지속적인 경쟁 우위를 좌우하는 가치 있는 자원으로 인적 자본을 강조했다. 첨단 기술, 생산 설비 및 기자재, 원자재 공급망 등 물적 자본은 후발 주자들이 모방할 여지가 있지만 뛰어난 인재들의 지식, 전문성, 경험의 총화인 인적 자본과 이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 문화 및 시스템은 모방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바니 교수는 인적 자본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져, 기업의 장기적 경쟁 우위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인텔은 오랫동안 압도적인 첨단 기술 기반의 물적 자본에 의존해 시장을 지배해왔으나, 이제 그 성공의 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기술 혁신의 주기가 짧아지고 첨단 산업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지며, 한때의 독점적 지위도 순식간에 도전받는다. 이를 방어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재 확보와 조직문화 혁신이 필수적이지만, 인텔은 그 기회를 놓쳤다.인텔의 행보는 한국 기업에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뛰어난 인재를 파격적으로 대우하고 조직 문화를 혁신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한국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로 향할 것이며, 해외에서 학위를 취득한 다음 세대의 인재들이 귀국하지 않는 현상도 더욱 두드러질 것이다.

과거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주말마다 비밀리에 일본 엔지니어를 한국으로 초청해 반도체 기술을 전수받게 했다는 일화는 혁신에 대한 절박함과 인재에 대한 욕심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기술을 사 오는 것이 아니라 혁신 기술을 보유한 인재들로부터 직접 배우며 조직 역량으로 내재화하는 이 과감한 접근은 삼성 반도체 사업의 지속적 경쟁 우위 확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는 인재경영에 대한 리더의 비전과 결단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AI 혁명’의 시대에 인재 전쟁에서 한 번 뒤처지면 첨단 기술 경쟁에서도 영원히 낙오될 수 있다. 인텔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한국 기업들의 담대한 인재경영 전략 수립과 신속한 실행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