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폐기돼야 할 '상법 개정안'

경영·주주권 분리, 주식회사制 근간
근거 없는 '반기업 정치' 근절돼야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상법 개정안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온 상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만이 아니라 주주와 회사로 확대하고, 이사에게 공정 의무를 부과하며, 합병·분할 시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가 주주를 보호하고 기업의 가치를 올린다고 주장한다.

국회의원의 국민에 대한 충실의무를 강화하기 위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충실해야 한다는 법률이 있다면 국회의원들이 정상적으로 국정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국회의원을 만나겠다는 민원인을 다 만나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 국회의사당에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람의 입장을 막을 수도 없어 국회 의사 진행이 어려워진다. 이번 상법 개정안을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더 심각하다.추상적인 의미에서의 주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주 개개인에게 동일한 충실의무가 있을 때는 기업 경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주식을 1주밖에 보유하지 않은 사람이 이사에게 수시로 보고를 요구할 수도 있다. 투기 세력들은 주주 간 불평등을 사유로 회사 전체를 위한 정당한 경영권 행사에 대해 소송을 남발할 것이다. 이들은 경영권 갈등으로 주가를 올린 뒤 주식을 팔고 나가면 그만이다. 경영진은 소송에 시달리고, 기업은 경영 방향을 상실해 주가가 폭락한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주주를 위한 것이고,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면 배임과 횡령으로 처벌받는다. 공정 의무라는 추상적 규정은 자의적으로 해석돼 다툼만 늘어난다. 회사가 이윤을 만들기 위해 거래 상대방을 선정하는 것은 경영권의 핵심이다. 공정이라는 잣대로 경영권을 침해해서는 기업의 가치가 올라갈 수 없다.

합병이나 물적분할 등에서 소액주주와 지배주주 간 불평등이 존재하고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회사의 이익이 증가하는데, 지배주주는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에게는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다. 쪼개기 상장으로 소액주주가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실증 연구 결과도 이런 경영적 판단이 회사의 가치를 제고하고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물적분할과 쪼개기 상장이 회사의 가치를 올리고 주주의 부를 늘려도 상법 개정안을 근거로 소송이 남발될 것이 우려스럽다. 남소로 인해 기업들은 자금을 동원하고 성장동력을 찾을 기회를 상실한다.

더욱이 개정안 자체가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특정 주주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다른 주주에게는 차별이다.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면 투자자는 사라진다. 이런 차별적 법률이 기업의 가치를 올릴 수 없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 가치 폭락의 길을 열어 줄 뿐이다.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표면적 주장과 다른 숨겨진 의도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주주를 지배주주와 소액주주로 나누고 이를 갈라치는 정치로 투기 세력과 일부 투자자의 지지를 얻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가 읽힌다. 상법 개정안은 국민을 분열시킨 수도 이전 주장과 같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이론적 근거도 없는 반기업 정치에 불과하다.

주식회사 제도는 산업혁명과 세계 경제 발전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다. 주식회사 제도의 근본은 경영권과 주주권을 분리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해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핵심 동력을 훼손하고 우리 기업을 투기 세력의 놀이터로 만드는 상법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