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네요"…챗 GPT로 보고서 '뚝딱' 만드는 공무원들 [관가 포커스]

미공개 정보 외부 유출 우려도
사진=한경DB
“김 사무관, 어제 유튜브 영상 하나 봤는데 우리 업무와 연관성이 크더군요. 한 장짜리 보고서로 요약해주세요.”

세종의 한 정부 부처에서 근무하는 김 모 사무관은 최근 소속 과장으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다. 국회 국정감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 갑작스레 '숙제'가 떨어진 것이다. 김 사무관은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챗 GPT를 활용했다. 우선 유튜브 영상을 휴대폰으로 녹음한 뒤 텍스트로 변환했다. 이 텍스트를 챗 GPT에 입력하고, '관련 내용을 한 페이지 분량으로 요약해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김 사무관은 이렇게 얻은 보고서 초안을 간단히 손봐 과장에게 제출했다. 김 사무관은 "과장님께 챗 GPT를 활용했다고 말씀은 못 드렸다"면서 "하지만 매우 흡족해하셨다"고 했다.

챗 GPT를 활용하는 공무원들이 늘고 있다. 부처 내부 보고서는 물론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보도자료나 연설문을 작성할 때도 챗 GPT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잔꾀를 부린다"는 상사들의 시선이나 "보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업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중앙부처 중에는 챗 GPT의 활용도를 평가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곳도 있다. 공무원이 직접 작성한 보도자료와 챗 GPT를 이용해 만든 자료를 두고 어느 것이 더 나은지 투표한 결과 챗 GPT가 만든 결과물이 더 많이 득표하기도 했다.부처에서 생산되는 보도자료나 연설문은 대략적인 형식이 정해져 있다. 공무원들은 "챗 GPT에 과거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새로 추가되거나 달리지는 내용을 입력하면 그럴싸한 자료가 완성된다"고 입을 모은다. 챗 GPT가 거짓 정보를 생성하는 ‘할루시네이션’을 일으킬 수 있지만, 초안만 챗 GPT에 맡기고 사람이 최종본을 완성하는 식으로 활용하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챗 GPT를 활용하는 공무원이 늘어난 배경에 ‘인력난’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인사혁신처와 정부조직관리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가직 일반공무원 정원과 현원은 각각 18만755명과 18만1420명이다. 문제는 현원에 휴직이나 파견 중인 공무원 수까지 포함된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실제로 근무하는 사람은 정원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직 공무원이 전산직 공무원을 대체하는 ‘미스매치’가 일어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챗 GPT 활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요 미공개 정보가 오픈AI(인공지능)로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언젠가는 공개된 정보로 작성하는 보고서는 챗 GPT를 활용하고, 미공개 자료가 담기는 보고서를 직접 작성하는 방식으로 나뉠 것”이라면서도 “두 보고서가 딱 떨어지게 구별되는 것도 아닌 데다 챗 GPT 활용 여부를 담당 공무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어서 도입을 장려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