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 두르고, 저격수 배치까지…'대선 불복' 폭동 대비하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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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날' 폭풍전야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방정부와 주정부 등이 소요 사태 등에 대비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워싱턴DC는 사람이 넘어갈 수 없는 높이의 철책으로 백악관 일대를 둘러쌌고, 일부 주에서는 국가방위군을 동원해 폭동에 대처하기로 했다. 선거관리 담당자들은 방탄복을 입고 근무하거나 드론으로 주변 상황을 실시간 감시 중이다.
백악관 일대 카페와 음식점들
가게문·유리창 등 판자로 덧대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 한숨
무장한 경찰과 군인 경계 삼엄
공무원들은 방탄복 입고 근무
민주·공화당 모두 불복 움직임
백악관 철책으로 둘러싸
3일(현지시간) 백악관과 인접한 펜실베이니아대로에서는 유리창 등을 나무판자로 가린 상점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목을 끌기 쉬운 길목에 있는 커피숍 ‘피츠’는 거의 모든 유리창을 판자로 덧댔다.피츠의 한 직원은 “지난 주말에 한쪽 벽을 막았고, 금요일 밤에 앞쪽 벽까지 모두 막았다”고 말했다. 바깥에 ‘영업 중’이라고 써 붙이긴 했지만 가까이 와서 보기 전까지는 문을 연 가게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볕이 들지 않아 어둑하고 답답한 매장을 지키던 또 다른 직원은 “손님이 확 줄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백악관 주변에는 사람 키보다 큰 철책이 세워지고 있다. 시위대가 밀려드는 상황을 가정해 쉽게 담장을 넘을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경찰차와 무장한 경찰 인력도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며 고개를 젓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국가방위군 동원…방탄복 근무
각 지역 주정부와 카운티, 선거사무소도 잇달아 보안을 강화해 극단적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네바다주와 워싱턴주는 국가방위군을 동원하기로 했다. 에이드리언 폰테스 애리조나주 총무장관은 공격받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방탄복을 착용한 채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WP는 애리조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매리코파카운티의 개표소는 요새처럼 보호되고 있다며 드론을 띄워 주변을 실시간 감시 중이라고 보도했다. 직원들은 SNS를 들여다보며 혹시 모를 시위대 습격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러스 스키너 매리코파카운티 보안관은 “필요하면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카운티는 투표소 직원에게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패닉 버튼’을 나눠주고 있다. 조지아주 최대 카운티인 풀턴카운티의 레지나 월터 홍보담당자는 “패닉 버튼도 고려했으나 다양한 사안에 대비하려면 문자 전송 시스템이 낫다고 판단해 이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조지아주도 의회 건물 주변의 철책을 한층 강화했다.
커지는 ‘선거 불복’ 우려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이듬해 1월 6일 의회의사당 난입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펜실베이니아 리티츠 유세에서 그해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나는 (백악관에서) 나오지 말아야 했다”고 했다. 유세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향해 “(유리 너머에 있는 것은) 가짜뉴스”라며 “총격을 당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이번 선거가 2020년 대선과 다른 점은 민주당 지지층의 언사도 상당히 거칠어졌다는 것이다. 이날 워싱턴DC에서 만난 매사추세츠 출신 기술자 랜디 롱(61)은 ‘일부 민주당 지지자도 선거에서 부당하게 지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느냐’고 묻자 자신을 가리키며 “내가 바로 그렇게 할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그 바보(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4년을 더 맡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