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3000만원 굴리는 30대 직장인, 넋 놓고 있다간 '낭패' [일확연금 노후부자]

퇴직연금 '대이동' 시작

퇴직연금 해지 없이 이전 가능
예금·펀드·ETF 갈아탈 수 있지만
디폴트옵션·리츠 등 일부 상품 제외
투자 가능 상품군도 확인 필수

ETF는 증권사 유리한 선택
사진=최혁 기자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퇴직연금 3000만원을 A은행에서 굴리고 있습니다. 김씨는 최근 퇴직연금 계좌를 들여다보곤 고민에 빠졌습니다. 3년간 수익률이 3%대에 그쳐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수익률을 높여보고자 다른 금융회사로 옮겨볼까도 했지만, 보유 중인 상품을 모두 팔아야 한다는 안내에 마음을 접었습니다.

최근 김씨와 같은 직장인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달 말부터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작한 겁니다. 앞으로는 가입한 퇴직연금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다른 금융회사로 통째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하지만 유의해야 할 사항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은 퇴직연금 갈아타기란 무엇인지, 갈아탈 때 유의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이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퇴직연금 실물이전은 가입자가 기존에 운용하던 금융상품을 매도하지 않고 사업자(금융사)만 바꿀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지금까지는 퇴직연금 계좌를 다른 금융사로 옮기려면 기존 계좌에 있는 상품을 모두 팔아 현금으로 바꾼 뒤 해지해야 했습니다. 귀찮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것도 문제지만, 중도해지로 낮은 금리를 받거나 팔고 사는 과정에서 손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번거로움과 손실 가능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갈아타기 절차는 간단합니다. 옮기고 싶은 금융사의 계좌를 개설한 뒤 이전 신청서를 내면 됩니다. 신청받은 금융사는 가입자의 실물이전 가능 상품 목록을 확인하고, 가입자에게 유의사항을 안내합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의사를 재확인한 뒤 실무 이전을 실행하고 문자메시지 등으로 결과를 통지해줍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절차 / 자료=금융감독원
이번 제도는 퇴직연금 사업자인 금융사 44곳 중 37곳에서 먼저 시행합니다. 부산은행, 경남은행, 광주은행, iM뱅크, 하나증권, iM증권, 삼성생명 등 나머지 7곳은 시스템 구축과 테스트 지연 등 때문에 내년 4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참여할 예정입니다.

퇴직연금 가입자로서는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는 금융회사로 계좌를 이동하는 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이때 꼼꼼히 점검해야 할 사항도 적지 않습니다.

디폴트옵션·리츠는 못 옮겨

먼저 본인이 투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체크해야 합니다. 이번 실물이전 서비스 대상은 예금, 공모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주요 퇴직연금 상품 대부분이 해당됩니다.

하지만 일부 상품은 실물이전이 불가능합니다.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과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사모펀드, 주가연계펀드(ELF), 파생결합증권, 환매조건부채권(RP), 머니마켓펀드(MMF), 종금사 발행어음 등이 대표적인데요. 보험계약 형태로 이뤄진 상품도 실물이전이 불가능합니다. 보험사의 퇴직연금은 대부분 보험계약 형태여서 실물이전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퇴직연금을 통째로 옮기기 위해선 갈아타려는 금융회사가 이전 금융회사와 같은 상품을 취급해야 합니다. 옮겨 가는 회사에서 내가 투자하는 상품을 취급하지 않으면 해당 상품을 매도한 뒤 계좌를 옮겨야 합니다. 가령 A증권사 퇴직연금 계좌에서 ‘미국 반도체 ETF’에 투자하고 있는데 B은행에서 해당 상품을 취급하지 않는다면 기존처럼 현금화한 뒤 갈아타야 한다는 뜻입니다.동일한 퇴직연금 제도 내에서만 이전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퇴직연금은 확정급여형(DB형),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뉩니다. 이 가운데 개인이 갈아타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운용주체가 근로자인 DC형과 IRP입니다. 이때 DC형은 DC형으로만, IRP는 IRP로만 갈아탈 수 있습니다.

DC형 계좌를 옮기려면 회사에서 지정한 퇴직연금 사업자가 어느 곳인지 확인하고, 그 중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변경할 수 있는 시기는 회사마다 다른데요. 보통 1년에 한두 번 정해진 기간에 사업자를 바꿀 수 있습니다. IRP 가입자는 원할 때 언제든 퇴직연금 사업자를 바꿀 수 있습니다.

수익률·수수료도 체크해야

퇴직연금 자산관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수수료입니다. 퇴직연금을 갈아타고자 한다면 수수료도 체크해야겠죠. DC형에서 회사가 의무적으로 납입하는 금액에 대한 수수료는 회사가 내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DC형에 개인적으로 추가납입을 하거나 IRP에 가입한 수수료는 본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금융사별로 퇴직연금 수수료율은 적게는 0.3%, 많게는 1.0%까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업권별로 보면 은행이 가장 비싸고, 생명보험-증권-손해보험 순입니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들어가면 회사별 수수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각 금융사의 평균 수익률이 얼마인지도 중요하지만, 투자할 수 있는 상품군이 얼마나 다양한지 꼭 살펴봐야 합니다. 이번에 퇴직연금 실물자산 이전 대상인 DC형과 IRP형은 기본적으로 근로자가 직접 연금자산은 운용하는 제도입니다. 다시 말해 수익률을 가르는 건 결국 투자자 본인의 결정인 것이죠.

만약 ETF에 투자하고 싶다면 아무래도 증권사가 가장 유리합니다. ETF만 놓고 보면 은행 퇴직연금 계좌에서 매수할 수 있는 상품은 대략 100~150개. 증권사에선 600~700개 가량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ETF를 사고파는 절차도 증권사를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합니다. 증권사에선 장중에 실시간으로 ETF를 사고팔 수 있지만, 은행은 주문을 모아놨다가 하루에 한 번이나 두번정도 한꺼번에 처리하기 때문입니다.만약 퇴직연금을 어떻게 굴릴지 막막하다면 각 금융사에서 제공하는 투자 자문 서비스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최근 로보어드바이저나 인공지능(AI) 자문 서비스 등 첨단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가 늘고 있는데요. 이러한 서비스를 활용하면 맞춤형 상담 등을 통해 더욱 전문적인 지원을 받고 투자 전략 수립에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을 갈아타고자 한다면 금융사별로 어떤 투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기 바랍니다.

서형교 기자 seogy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