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크립토 프레지던트' 선택"…환호하는 가상자산 시장 [한경 코알라]

김민승의 ₿피셜
사진=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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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토 프레지던트’ 트럼프가 이겼다

모든 선거에는 나름의 스토리가 있지만, 대부분의 선거는 현임 피선출 권력에 대한 만족도와 재신임 여부가 투영된다. 이번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현임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후보 자체의 인물이나 공약보다는 현 바이든 정권의 공과에 대한 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가 폭등과 이민자 이슈는 해리스 후보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해리스 후보는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등 극단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선명성을 획득하려 했지만, 민심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와 크립토 수퍼팩(Super PAC)

이번 선거에서 가장 눈에 띈 인물은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일 것이다. 머스크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아메리카 팩(America PAC)에 7500만 달러(약 1000억 원)를 기부했고, 경합 주에서 헌법 제1조와 제2조를 지지하는 청원에 서명한 사람을 대상으로 매일 1명을 추첨해 100만 달러를 지급했으며, 자기 소유의 X(옛 트위터)를 통해 강경 트럼프 지지 발언을 이어가는 등 물심양면으로 트럼프를 지원했다.

미국 가상자산 업계의 트럼프 지지 또한 그에 못지않게 거셌다. 미국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NYSE:COIN)는 또 다른 슈퍼 팩(Super PAC)인 페어셰이크(Fairshake)에 7500만 달러를, 크립토 벤처캐피탈리스트(VC)인 a16z는 페어셰이크에 6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리플 또한 5000만 달러를 기부했으며, 이에 힘입어 페어셰이크가 모금한 자금은 총 2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금들은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물론, 각 주에서 치러진 양원 의원 선거에서도 친 가상자산 후보를 지지하는 데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SEC의 과잉 규제, 그리고 대안으로서의 트럼프

머스크와 가상자산 업계의 공통점은 현임 바이든 행정부의 과잉 규제에 대한 반발했다는 점이다. 머스크의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SpaceX)가 미국 정부와 어떤 마찰이 있었는지는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잘 알려졌다. 9월 26일 머스크는 자신의 X를 통해 “미국은 관료들의 배만 불려주는 것 외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는 새로운 기관의 비합리적인 규제로 인해 점점 더 큰 산더미 같은 규제에 질식하고 있다”라고 게시하는 등 현 정부의 규제에 대한 불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바 있다.

미국 가상자산 업계도 대선 캠페인 초기부터 트럼프를 강력하게 지지했다. 현임 바이든 행정부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불명확한 기준으로 조사와 소송을 남발하며 가상자산 업계 전체의 숨통을 조였기 때문이다. SEC는‘질식 작전 2.0(Operation Choke Point 2.0)’을 통해 가상자산 업계로 유입되는 자금을 제재한 것은 물론, 리플 소송으로 초기코인공개(ICO)를 틀어막은 것에 이어 2023년 중순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를 연달아 고소하며 솔라나(SOL), 카르다노(ADA), 알고랜드(ALGO), 트론(TRX), 유니스왑(UNI), 엑시인피니티(AXS) 등 다수의 메이저 알트코인들에게 ‘미등록 증권’이라는 리스크를 안겼다.

이후 컨센시스(Consensys, 메타마스크 제작사), 유니스왑(Uniswap), 오픈시(OpenSea)등 이더리움 생태계 핵심 개발사들에 대해서도 ‘미등록 증권’ 관련 혐의를 내세우며 조사와 웰스노티스 발부를 통해 생태계 전반을 압박했으며, 크립토 트레이딩 업체들과 벤처캐피탈(VC)들에도 같은 명분으로 전방위적인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런 SEC의 과잉 규제(overreach)에 대한 비판도 줄을 이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10년간 임의로 반려한 SEC에 대해 미국 법원은 ‘자의적이고 변덕스럽다(arbitrary and capricious)’라고 지적했으며, 의회에서 겐슬러 SEC 의장은 ‘포켓몬 카드도 증권이냐’라는 조롱 섞인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SEC의 5명 상임위원 중 하나인 헤스터 퍼스(Hester Peirce)는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규제 명확성의 부족을 감추기 위해 법적으로 부정확한 관점을 취했다”, “정확하지 않다는 것은 규제 기관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으며, 또 다른 상임위원인 마크 우에다(Mark Uyeda)는 방송에 출연해 SEC의 과잉 규제가 “산업 전반에 재앙(disaster for the whole industry)”이라고 말했다.

“안티 크립토 군단”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이 주축이 된 미국 민주당의 “안티 크립토(anti-crypto, 반 가상자산)” 기조는 SEC의 ‘증권성 시비’를 통해 업계 전반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이러한 고충을 빠르게 포착한 트럼프는 현임 시절의 입장을 선회해 가상자산 지지 및 지원을 천명했으며, 업계는 자구책으로 트럼프와 친 가상자산 의원 후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하게 된 것이다.

가상자산이 승패를 갈랐나

경제, 인종, 국경, 젠더, 범죄혐의 등 수많은 이슈들이 얽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상자산이 승패를 가른 유일한 요소라고 압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번 선거 초미의 관심사였던 경합 주(swing state)들에서는 가상자산 이슈가 표심을 가른 핵심적인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지난 10월 16일 코인베이스는 자사의 X에 애리조나, 네바다, 미시건,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경합 주의 가상자산 이용자 수와 2020년 표차를 게시하며 투표를 독려한 바 있다. 선거 직전까지 예측이 어려웠던 이 다섯 개 주는 놀랍게도 모두 트럼프를 선택했다.리플 등 여러 가상자산 업체가 해리스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등 해리스에게도 친 가상자산 스탠스를 보일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기했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자산 등 신기술을 장려(encourage)’할 것, ‘가상자산을 소유하거나 투자한 흑인 남성들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규제를 지원할 것’ 정도의 미적지근한 메시지만 냈을 뿐이다.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직접 등장해 ‘취임 첫날 겐슬러 SEC 위원장 해고’, 신시아 러미스 상원의원과 함께 ‘비트코인 100만 개 전략비축자산’ 입법 등을 약속한 트럼프와는 확연한 온도 차를 보였다.

양당에 강한 소속감이나 유대감이 없는 테슬라(TSLA) 주주가 어느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코인베이스 추산 5200만 명을 상회하는 미국 내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영향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주별 승자독식(winner-takes-all) 방식인 미국 간접선거 제도상 경합 주에서의 가상자산 의제는 주별 승패, 더 나아가 선거 전체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시사점과 향후 예측

2024년 가상자산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과 대선을 거치며 변방에서 중앙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블랙록, 피델리티 등 글로벌 금융사들이 앞다투어 출시한 비트코인 ETF는 미국 ETF 역사상 가장 크고 화려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선거 직전까지도 기존 언론이 해리스의 승리를 점쳤지만, 가상자산 기반 예측시장(prediction market)인 폴리마켓과 칼시 등은 트럼프의 승리를 주 단위까지 정확하게 예측했다. SEC의 가상자산 규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과오로 작용했고, 이를 바로잡겠다고 약속한 트럼프는 가상자산 업계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되었다.

업계 소식통들은 겐슬러 SEC 위원장의 사임을 예측하고, ‘크립토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헤스터 퍼스 위원이 차기 위원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전해진다. 새 행정부에서 겐슬러 위원장의 빈자리에 친 가상자산 성향의 위원을 임명할 가능성도 크다. 즉, SEC의 무차별 가상자산 규제 기조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고, 1조 달러 규모의 미국 지급결제 업체인 스트라이프(Stripe)는 유에스디코인(USDC) 결제를 시작했으며, 또 다른 대형 지급결제 업체인 벤모(venmo) 또한 가상자산 플랫폼인 문페이(moonpay)와 제휴를 시작했다. 인공지능(AI)과 가상자산은 빠르게 그 접점을 넓혀 가고 있으며, 밈 코인의 성장세 또한 눈부시다. 이 거대한 시장의 수요를 ‘불명확성’으로 가로막고 있던 SEC가 자세를 바꾼다면 미국에서 대기업과 글로벌 자본의 힘을 입은 혁신적인 가상자산 서비스 및 상품들이 다수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에 우리는 준비되어 있을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유튜브처럼 미국산 서비스에 국내 시장을 선점당한 후 ‘K-블록체인’ 같은 이야기로 뒷북을 치지 않을지 걱정이다. 소셜미디어는 광고 플랫폼일 뿐이지만,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는 ‘돈’과 직접 연결된다.

한국은행 총재가 통화 주권에 대한 우려를 말한 지 1년 가까이 지났다. 이제야 출범한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가상자산위원회에서는 이 변화에 대처할 다양한 의견들이 빠르게 개진되어야 할 텐데, 규제 전문가는 있어도 시장과 업계를 잘 아는 업계 출신 인물은 없어 보인다. 재차 묻고 싶다. 우리는 변화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김민승 코빗리서치센터장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