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美 잠재력 깨워 '이익창출기계'로 만들겠다" [2024 美대선]

트럼프 2.0시대 키워드는 T·R·U·M·P
사진=AP
트럼프 2.0 시대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에 비해 훨씬 강력한 '미국 중심주의'를 예고하고 있다. 1기 행정부에서는 기존 공화당원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혼재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원하는 정책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엔 다르다.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케네스 웨인스타인 일본석좌는 "1기 행정부에서는 스티븐 므누신이 한 명이었다면 이제는 수십 명의 스티븐 므누신이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의 정책은 주로 관세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한 보호무역주의와 고립주의, 동맹과도 비용 정산을 우선시하는 거래주의, 미국 제조업 부흥에 대한 강력한 열망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 안에 다소의 모순이 있더라도 그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는 문제를 뜯어고칠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이 제시한 트럼프 시대 5가지 키워드 'T·R·U·M·P'를 이용해 그의 정책 방향을 짚어봤다.

T / Trade and Tariffs / 미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6일 새벽 선거 승리 연설에서 “강하고 안전하며 번영하는 미국을 선사할 때까지 온 힘을 다할 것”이라며 미국 제조업 부흥을 약속했다. 대통령이 가진 권한을 남김없이 활용해서 제조업을 살리겠다고 한 것이다.

그가 가진 첫 번째 무기는 관세다. 그는 “관세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면서 ‘관세 대통령’을 자칭하고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보편관세 10~20%를 매길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 언저리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도 대중 관세율이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10%대로 올라선 영향이다. 대중 관세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관세율은 이보다 낮다. 상·하원까지 모두 장악한 트럼프 정부는 임기 초반 평균 관세율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존 협정도 모두 뒤흔들 것을 약속했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다. 그는 멕시코에서 생산된 중국 브랜드 자동차 등이 미국으로 협정을 이용해 무관세로 들어오는 점을 비판하면서 이런 물건에 대해 "100%, 200%, 1000% 등 필요한 만큼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도 다시 조정받을 가능성이 높다.

◆R / Risk take / 저금리 약달러 지향하며 ‘리스크’ 감수

경제학 이론을 따르면서 비교적 완만한 변화를 지향했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는 목표를 위해 정책을 밀어붙이고 부작용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기업 활성화를 위해서 금리를 낮추고 달러화 가치도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하면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고 제조업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는 전략이다.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 미국 중앙은행(Fed)에 개입하겠다는 의지도 감추지 않고 있다. 억지로 낮춘 금리는 물
가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경제학의 상식이지만 일자리 문제에 비하면 후순위라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크리스 그리스산티 MAI 캐피털매니지먼트의 최고 시장전략가는 "트럼프의 승리는 무역적자를 증가시키고 물가를 높이겠지만 '코퍼레이트 어메리카(기업으로서의 미국)'에 도움이 된다면 그는 위험을 감수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에 말했다.

◆U / Unpredictability / 예측 어려운 ‘불확실성’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기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해 온 각종 정책은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 처하게 됐다. 가치 중심적인 동맹 관계를 지향하는 바이든 정부와 달리 거래 기반으로 계산하는 것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코로나19 키트를 보내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던 1기 행정부 때처럼 언제든지 적대세력이나 비 민주주의 국가와도 협상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열려 있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 어디로 튈 지 알기 어려운 럭비공 스타일은 세계 정치·경제에 큰 불확실성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전의 교착상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한 번에 끊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동시에 받는다.

그는 바이든 정부가 지원해 온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우려해 내년 1월20일 이임식이 열리기 전에 우크라이나 지원을 서두를 계획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24시간 내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는데,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일부를 내주고 현 상태로 정전 혹은 종전하는 형태가 가장 유력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와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중단이 합쳐지면 유럽과 미국은 예전과 같은 ‘서방 단일대오’로 기능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는 전 세계 곳곳에서 지정학적 갈등이 악화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IRA와 반도체법 등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각종 보조금 지급도 줄어들거나 조정될 여지가 있다. 미국정부가 한 약속이라고 해도 언제든 미국의 이해에 따라 뒤집을 수 있다는 게 트럼프식 계산법이다.

◆M / Manufacturing / 최고 목표는 미국 ‘제조업’ 부흥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런 전략을 통해서 추진하는 것은 결국 미국 제조업 부흥이다. 그는 선거 직전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찾아 자신은 "가장 낮은 세율, 가장 적은 규제, 가장 낮은 에너지 요금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믿을 수 없는 잠재력을 열어젖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미국을 "이익을 창출하는 기계(profit making machine)"로 만들고 큰 부(fortune)를 미국인들에게 줄 것이라고 했다. "더 강하고 더 큰 제조업"을 만들겠다면서 그는 한때 가구업이 융성했던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을 다시 '가구의 수도'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이런 그의 직설적인 언어는 그가 이번 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압승을 거둔 배경이다.

미국 리쇼어링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리쇼어링과 미국에 대한 외국직접투자(FDI) 금액으로 생겨난 일자리는 2010년 1만명대였다가 2021~2023년에는 20만~30만명대로 급증했다. 실제로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는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된 미중갈등과 바이든 정부의 IRA 및 반도체법 등의 영향으로 미국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P / Paradox / 감세·관세인상과 약달러·저물가 양립 어려운 ‘역설’

그러나 그가 추진하는 정책 안에는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법인세와 개인소득세를 깎아주는 대신 관세로 세금 수입을 충당하겠다고 했지만 관세를 높여서 이를 충당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또 관세를 높이면 무역적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그의 논리는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인해 무역적자 규모가 많이 줄어들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약달러를 지향하는 정책도 고관세 및 감세로 인한 대규모 재정적자 등과 배치된다. 윌리엄 더들리 전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고관세, 약달러는 재앙의 레시피'라는 기고문에서 관세가 올라가면 수입이 줄고 무역적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정치인들의 기대지만, 실제로는 수입품의 가격이 상승해 무역적자가 유지되며 이는 달러가치 상승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달러가치는 미국의 저축 부족을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의 무역 적자를 발생시키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미국의 저축이 적은데 기업에 대한 투자가 많이 이뤄지기 때문에 해외에서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게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금 유입은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교환의 결과다. 다만 이러한 과정이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시차를 두고 발생하기 때문에 트럼프 2기 재임기간동안에는 무역수지가 실제로 개선되고 물가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데 그칠 수 있다. 이로 인한 진짜 비용은 트럼프 정부가 아니라 그 다음 정부에서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