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부터 한국의 20세기를 꼼꼼히 기록한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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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랑 창덕궁 개관 첫 전시가보지 않은 세상,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경험하게 만드는 통로. 시대를 불문하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해 온 역할이다. 지금 서울 종로구 예화랑의 새 공간에서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격동의 시대를 겪은 한국 사회가 펼쳐진다. ‘20세기를 대변하는 사진가’로 알려진 임응식의 사진 아카이브 전시 '아르스 포토그라피'가 열리면서다.사진가 임응식은 일제강점기였던 1921년 태어났다. 1930년대 중반 만주에서 카메라를 잡고 2001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오직 사진에만 매달렸다. 만주부터 강릉까지, 그는 10여 년 동안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과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하지만 1945년,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카메라와 함께 대부분의 자료들이 불에 타 없어졌다. 그가 가장 활발히 움직였던 1930년대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이유다.분신과도 같던 작품들을 잃은 후 그는 사진에 더욱 매진했다. 서울, 부산, 인천 등 전국 팔도를 쏘다니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한국전쟁 당시엔 종군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라 부르는 사진들로 조국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꾸밈없이 담아냈다. 단순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시대를 살아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담아내며 당시 사진들은 역사적 자료가 됐다.임응식은 스스로가 꼭 남겨놓아야겠다고 생각한 존재들엔 모두 렌즈를 들이댔다. 박서보와 같은 유명 작가들, 고건축, 평범한 길거리 모습까지 대상도 가리지 않았다. 그를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부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임응식: 아르스 포토그라피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모두 겪은
사진의 대가 임응식 일대기 전시
2001년 작고 후 손자가 유품을 정리하며 발견한 작품이 무려 8만 장이 넘었을 정도로 그의 70년 사진첩은 방대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의 작업들을 조명한다. 임응식의 렌즈를 통해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戰後) 회복기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다.그는 일본에서 폭격으로 카메라를 잃었을 때에도 작품을 남기고자 하는 열망이 큰 작가였다. 물감과 캔버스 대신 현상액과 인화지를 사용해 추상화를 그렸다. 독창적인 추상화 작품들에는 자신의 성 '임'에서 따 온 ‘림스그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모두 조국의 해방을 겪은 뒤 강렬한 감정을 담아낸 작업이다.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자 그는 부산에서 본격적으로 사진 전시를 시작했다. 전쟁통에서 고군분투하는 민족의 모습을 주로 선보였다. 부서진 건물, 황량한 거리,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피란민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서도 당시 전시됐던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24일까지 이어진다.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