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번역은 뇌와 심장의 협동작업…AI가 따라 하기엔 역부족이죠"

책마을 사람들 - 최성은 교수
“문학 번역은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 뇌와 심장이 협동해야 합니다. 문장이 담은 풍자와 아이러니, 함축적 의미를 챗GPT 등 인공지능(AI)이 따라 하긴 역부족이죠.”

국내 폴란드 문학 번역 1인자로 꼽히는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교수(53·사진)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 사옥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최 교수는 얼마 전 방한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으로부터 폴란드어와 폴란드 문학을 한국에 널리 알린 공로로 십자장교 공훈훈장을 받았다.최 교수는 1989년 한국과 폴란드가 수교를 맺은 이듬해 한국외대 폴란드어과에 입학했다. 폴란드로 유학을 떠나 한국인 최초로 폴란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그가 한국어로 번역한 폴란드 문학은 40권에 달한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올가 토카르추크 작품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도 최 교수다. 그는 “토카르추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들 중 하나”라며 “세상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가”라고 했다. 이어 “토카르추크는 특히 ‘단편의 장인’이라고 불릴 만큼 단편소설에서 그의 시적인 문체가 더욱 빛이 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토카르추크의 단편집 <기묘한 이야기들>을 번역했다.

폴란드어는 7개의 격(품사)과 3개 성(性)을 지녀 배우기 쉽지 않은 언어로 알려져 있다. 단어 하나가 나타내는 정보가 많다. 한국어로 풀어 설명하면 분량이 늘어날 정도다. 최 교수는 “같은 유럽 문화권이라면 문화와 용어가 비슷해 번역할 단어를 찾기 쉬운 편이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며 “번역하다가 중간에 늘 길을 잃고 헤매는 ‘의미의 회색지대’에 도착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럴 땐 나무 대신 숲을 본다고. 단어와 문장 하나에 천착하지 않고 작품 전체에 녹아 있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낸다.과거엔 가독성이 좋고 우리말로 자연스러운 번역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고 한다. 최 교수는 “외국 문학을 번역하는 이유가 국내 문학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고 표현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요즘은 독특한 어법이나 리듬 구조를 그대로 살리는 등 조금 낯설고 이국적으로 번역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폴란드 문학은 막상 읽어 보면 익숙한 점이 많다고 한다. 최 교수는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독일과 러시아의 외침을 겪는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며 “문학에서도 굉장히 많은 주제의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지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탈중심’이 세계적 트렌드인 만큼 폴란드어와 한국어 등 이른바 비주류 언어로 쓰여진 문학이 갈수록 주목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