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다 노인만 있어서 우울"…美 의사가 만든 요양원 봤더니 [집코노미 - 집 100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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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모델’형 요양원 '에덴 얼터너티브'
동물 뛰놀고 정원 가꿀 수 있도록 구성
'정서적 고립감' 해소…지역사회도 형성
미국 등 23개 국가서도 '주거형' 운영
호주에 있는 고급노인요양시설 '존 웨슬리 가든즈 에이지 케어 커뮤니티' 전경. 이곳엔 노인요양시설과 함께 은퇴자마을, 장애인 특화 주거시설, 호스피스 등이 함께 있다.
"내가 왜 노인복지주택에 들어가기 고민되는 줄 알아요? 죄다 노인만 있어서에요. 같은 노인만 있으면 좋을 줄 알죠? 기운이 쭉빠지고 우울해져요. 꼭 노인 감옥 같거든요."

지난달 31일 서울의 노인복지주택 상담실 앞에서 만난 이 모 씨(70)는 이같이 말했다. 노인복지주택이 시설도 좋고 식사도 잘 나오지만, 그래도 원래 살던 동네에서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게 더 좋다고 덧붙였다. 이유를 묻자 "외롭기 때문"이라고 잘라 답했다. 고령자들이 노인복지주택을 비롯한 노인요양시설을 꺼리는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이 '정서적 고립감' 때문이다.
호주의 존 웨슬리 가든즈 에이지 케어 커뮤니티에 있는 한 정원. 다양한 식물을 심고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화단의 높이를 높였다.

한 미국 의사의 참신한 시도에서 출발한 '프로그램'

미국에선 우리보다 30여년 앞서 이런 고민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1991년 뉴욕주의 소도시인 뉴 베를린에 있는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 빌 토마스는 무료함, 외로움, 무력함을 고령자의 '새로운 역병'으로 정의하고 이를 없애기 위한 시도를 했다.

당시 뉴욕주 규정상 요양원엔 개 1마리와 고양이 1마리만 들일 수 있도록 허용됐다. 빌은 주 의회를 설득해 작은 개 2마리, 고양이 4마리, 잉꼬 새 100마리를 요양원에 들여놓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각 방에 식물도 놓았다. 잔디밭을 없애고 채소밭과 꽃밭 정원도 만들었다.또 시설 직원의 아이들이 학교가 끝난 후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요양원 안에 방과 후 교실을 열었다. 나중엔 탁아시설까지 만들었다. 지역민의 가족과 친구가 뛰놀 수 있도록 요양원 정원도 개방했다. 이른바 '집과 같은 요양원'이다.

생명이 있는 반려동물이 많아지면서 요양원에 거주하는 고령층에 변화가 나타났다. 고령자 스스로 직접 식물에 물을 주고, 새 소리를 듣고, 강아지와 산책하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줬다. 체이스 메모리얼 요양원 거주자에게 활력이 생기면서 이들이 복용하는 처방약은 지역 내 다른 요양원보다 절반가량 줄었다. 자연스레 약 구매비용이 30%, 사망률은 15% 감소했다.

빌은 이 요양원에 적용한 프로그램인 '에덴 얼터너티브(Eden Alternative)'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1994년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에덴 얼터너티브는 현재 거주 고령층이 동식물, 지역사회 주민과 쉽게 교류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요양원 운영 자문서비스기관으로 운영되고 있다.현재 미국을 비롯해 영국, 호주, 독일, 스웨덴 등 23개국 요양원과 노인복지시설이 에덴 얼터너티브 인증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05년에는 미국 로버트우든 존슨재단(Robert Woods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 '그린하우스 모델'을 만들어 미국 내 요양원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주의 존 웨슬리 가든즈 에이지 케어 커뮤니티. 외부에 있는 고양이타워와 거주공간 복도에 있는 고양이집이 인상적이다.

동식물에, 울타리도 개방하자 우울증 '감소'

지난 8일 서울 역삼동 아산나눔재단에서 '시니어 주거 이슈 및 쟁점과 개선방안 모색'이란 주제로 열린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이 '에덴 얼터너티브'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에덴 얼터너티브 한국 대표인 정미렴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국내 노인요양시설의 기능적 부분은 이미 다 해결됐지만 정말 미래에 살고 싶은 노인요양시설은 적다"고 지적했다. 내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날 에덴 얼터너티브 노인요양시설의 대표적 사례로 호주 퀸즐랜드에 있는 '존 웨슬리 가든즈 에이지 케어 커뮤니티'를 소개했다. 우리나라의 노인복지주택과 같은 고급 노인요양시설이다. 노인요양시설 13곳과 은퇴자마을 3곳, 장애인 특화 주거시설 14곳, 호스피스 2곳 등이 옹기종기 마을처럼 모여 있다.

이곳의 특징은 집 면적보다 정원 면적이 더 많고 울타리가 없다는 점이다. 남쪽으로는 울창한 숲지대로 연결된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화단의 높이를 높이고, 반려동물을 위한 고양이타워를 꾸며놓은 점도 인상적이다.

그는 에덴 얼터너티브의 성공 요인으로 '개방'을 꼽았다. 요양원의 무료함과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 요양원에 동물과 식물, 어린이까지 들여놨다. 정 교수가 이날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에덴 얼터너티브 프로그램을 진행한 요양원은 항정신성 약물 사용을 26.3%나 줄였다. 반면 비참여기관은 12.4% 줄이는데 그쳤다. 통증과 낙상횟수, 우울증 정도가 모두 감소하는 등 거주고령자들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존 웨슬리 가든즈 에이지 케어 커뮤니티 평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 형태의 정원 배치로 활기와 생동감을 제공한다.
반면 한국의 노인복지주택이나 노인요양시설은 대부분 폐쇄된 채 운영된다. 밖에서 들어가기 까다롭고 입주한 고령자도 사실상 폐쇄된 공간에서 갇혀 산다. 정 교수는 "노인주택과 노인요양시설 거주자가 자신의 집에 사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게 가장 중요하다"며 "잘 확산되면 고령자 중심의 지역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에덴 얼터너티브를 도입하려는 여러 연구와 적용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2010년 중반 이후 이에 대한 연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를 코 앞에 두고 있다. 에덴 얼터너티브처럼 '의료 모델(Medical Model)' 중심의 노인주택 환경에서 노후 삶의 질 증대를 위한 '주거모델(Habitat)'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대규모 시설에서 소규모 주거로 형태를 전환하고 지역사회 주민과 쉽게 교류할 수 있는 에덴 얼터너티브 방식을 도입해 이른바 '집 같은 노인주거시설'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년 65세 인구가 전 국민의 20%를 웃도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합니다. 은퇴한 시니어 세대에게 건강과 주거가 핵심 이슈입니다. ‘집 100세 시대’는 노후를 안락하고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주택 솔루션을 탐구합니다. 매주 목요일 집코노미 플랫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