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의 사상, 지대는 자본주의 악인가?
입력
수정
[arte] 조원경의 책 경제 그리고 삶고아인 카츄사는 어머니가 일한 주인집에서 자란다. 그런 와중에 집주인 아들 네플류도프를 사랑한다. 그는 카츄사를 하룻밤 상대로만 생각했다.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버린 첫사랑 도련님과 정든 밤을 못 잊은 카츄사. 하룻밤을 지내고 잠들어 있는 카츄사에게 100루블 지폐 한 장을 가정부를 통해 편지 봉투에 넣어 전달한다. 젊은 귀족 네플류도프가 하녀 카츄샤를 유혹하여 임신시킨 데서 계급 간의 갈등이 느껴진다. 그는 아무 미련도 없이 그녀의 곁을 떠나고 카츄사는 그 집에서 해고되어 마침내 창녀가 된다.
톨스토이 로 읽는 경제학
19세기 美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지주의 이익이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
토지에서 생겨나는 소득은 불로 소득이기에
국가에서 모두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
소설 속 주인공의 대사에서
헨리 조지의 토지 이론 볼 수 있어
세월이 흘러 카츄사는 법정에서 네플류도프와 피의자와 배심원의 관계로 재회하게 된다. 시베리아에서 온 상인을 살해한 혐의로 그녀(여죄수 마슬로바)가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그 순간 네플류도프는 망각하고 죄의식도 없이 버렸던 그녀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카츄사는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벗지 못하고 4년간의 형을 받는다. 그녀가 시베리아의 유형지로 떠나게 되자 네플류도프는 양심의 가책으로 번민의 나날을 보낸다. 그는 남의 노역으로 포식하게 되는 토지 사유제에 대하여 회의를 느낀다. 카츄샤의 감형 운동을 위해 감옥에 드나들며 도움을 바라는 무고한 죄수를 발견하고 체제의 불합리함을 목격한다.
그러다 자신의 전 재산을 농노들에게 나눠주고 카츄샤를 구하기 위해 시베리아로 나선다. 그는 그녀를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시베리아로 떠나는 도중 여러 가지로 그녀를 보호하고, 형사범에서 정치범으로 옮겨 노동량을 줄여 준다. 어느 날 밤 그는 여관방에서 성경을 펴놓고, 그 복음서 속에서 갱생의 길잡이를 발견한다.카츄사와 관련된 사건이 시베리아에서 판결 취소를 받게 되자, 네플류도프는 그 소식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한걸음에 그녀를 찾아 나선다. 그는 그녀를 만나 용서를 구하고 결혼하고자 작정했다. 운명은 사랑과 다르게 움직인다 했나! 카츄사는 정치범인 시몬손이라는 혁명가와 이미 결혼을 결정한 상황이었다.시베리아는 눈보라에 갇혀 있었다. 네플류도프는 어느 날 황제의 특별 사면이 카츄사에게 내렸다는 기쁜 소식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소식을 전하는 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도 특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시몬손과 더불어 유형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다.
네플류도프는 카츄사한테는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그는 그 사실이 슬프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는 네플류도프에게 이해와 허락을 구했다. 사랑하지만 헤어지자고 말이다. 그녀도 마음속으로는 네플류도프를 여전히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에게 감사하지만, 그의 장래를 생각해 짐이 되기 싫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지만 다른 길을 선택하는 여성인 카츄사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용단을 한 것일 수 있다. 네플류도프는 복잡한 심경이 되지만 그녀를 축복해 준다.
이제 그를 괴롭게 하는 것은 카츄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다. 새로운 사명감으로 밤을 꼬박 새운 네플류도프에게는 이제 다시 새 생활이 다가온다.작품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러시아 정교회에 속하지 않는 성령부정파교도(聖靈否定派敎徒)와 친교가 있어 4,000명에 이르는 이교도를 미국에 이주하도록 할 목적으로 자금 조달을 위해 쓴 소설이다.
이별은 그렇게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연인 사이를 떠미는 바람 같은 건가. 때로는 자신을 궁상맞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랑은 낭만에 앞서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낭만적 연애와 그 후에 오는 현실의 모습을 함께 고려해야 완성된다. 사랑하지만 헤어진다는 말은 그래서 우리네 삶에서 이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랑 이야기를 떠나 네플류도프에게서 묻어나는 부활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그는 스스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왕족 다음의 고위 귀족인 공작이란 지위를 포기하고자 했다. 이는 귀족 지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토지를 내놓는다는 것은 농민 해방을 의미한다. 귀족들은 일하지 않고 농민이 생산해 바친 소작료로 부를 형성하고 그 부로 쾌락을 추구한다. 사실 경제학에서 애덤 스미스도,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도 지대(소작료)를 부정적으로 보았다. 그들은 개인의 소득은 노동의 대가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들 경제학자는 지주의 이익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저해하고 자본축적을 방해해 산업사회로의 이행을 더디게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상은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핵심 사상으로 나타났다. 그는 인구 증가와 기술개발로 경제가 번영해도 노동과 자본이 빈곤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제발전의 대부분을 토지소유자가 차지하기 때문이라고 봤다. 분배를 좌우하는 권력을 지주가 장악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토지 소유의 폐해가 심한 나라의 경우, 지주가 성장의 결실을 대부분 가져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에서 생겨나는 소득은 불로 소득이기에 전부 환수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게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토지세만 두고 소득세, 관세, 상속세 등 모든 세금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문득 소설 속 네플류도프가 농부들에게 토지의 사유(私有)에 대한 자기 의견을 들려주는 대목이 생각난다.
“내 생각에 토지란 매매할 수 없는 것이요. 그 이유는 만일 토지를 팔 수 있다면 돈 있는 사람들은 이를 모조리 사버릴 것이고, 만일 토지가 없는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게 될 경우에는 그 권리로 자기가 받고 싶은 만큼의 액수를 얼마든지 받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오. …… 개인이 토지를 소유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토지를 나눠주려는 것이오.”
네플류도프의 이 말에서 헨리 조지의 토지 이론이 생각난다. 그는 토지 분배 방식에 대해서 헨리 조지의 방법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에게 지불해야 하는가? 이것을 정하기란 매우 어렵소. 더욱이 공동자금을 모을 필요성도 있으니 토지를 가질 사람들은 자기 토짓값만큼의 금액을 공동자금으로 지불하면 되는 것이오. 그렇게 하면 하나 차별이 없을 거요. 그러니까 좋은 토지를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그보다 못한 토지보다 땅값을 더 지불하고 토지를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은 땅값을 내지 않으면 된다는 얘기요. 한마디로 토지를 쓰는 사람만이 공동자금으로 땅값을 낸다는 얘기요.”헨리 조지의 사상은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의 원천은 네플류도프의 설교처럼 우리 가슴에 울림이 있다. 때로 토지는 자본주의를 매우 불평등하게 만드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소설 <부활>을 읽으며 그룹 '부활'의 노래를 불러본다.
“한참 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 언덕 넘어 거리엔
오래전 그 모습 그대로 넌
서 있을 것 같아“네플류도프는 카츄사에게 다시 태어난 그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봐 달라고 빌고 있었다.
조원경 UN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