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늘리는 美 양형기준이 금과옥조일까 [하태헌의 법정 밖 이야기]

형벌의 목적과 우리나라 양형에 관한 단상
엄벌주의가 곧 범죄율 낮춘다는 근거 없어
美, 양형 기준 높이는 역사·문화적 이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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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강서구 오피스텔 살인 피의자 A씨가 1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2024.11.10/뉴스1 *사진은 칼럼 내용과 관련 없음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제목처럼 죄와 벌은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개념으로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종교적 개념을 떠나 형법상 국가가 죄를 지은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고, 형벌은 어떤 기능을 하는 걸까?

‘응보’ 목적 달성 위해 적절한 양형?

일반적으로 형벌의 목적과 기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가장 중요하고 전통적인 것은 ‘응보이론’이다. 말 그대로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것으로,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복수심을 국가라는 공적 시스템이 대행해주는 것이다. 피해자가 모두 용서한 경우 국가가 대신 벌을 줄 명분이 없어, 일부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아예 벌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합의하거나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면 가볍게 벌하는 이유도 이러한 응보 목적이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일반 예방’이다. 쉽게 말해 일벌백계를 위한 형벌을 의미한다. 죄를 지은 자에게 엄한 처벌을 내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형벌이 무서워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응보 이론 못지않게 중요한 형벌의 기능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처벌이 두려워 죄를 짓지 못하게 하려면 누구나 무서워할 정도로 중한 처벌이어야 한다. 이런 공포심 유발을 위해 지은 죄에 비례하지 않는 과도한 처벌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다음으로는 ‘특별 예방’이다. 죄를 짓고 형벌을 받은 사람이 그 고통을 기억해 다시는 죄를 짓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기능을 말한다. 뜨거운 맛을 보여줘 정신 차리게 하는 것으로, 다시 범죄의 유혹이 올 때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이런 목적에 의하면 형벌은 이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울 필요가 있다.

교화 이론은 죄를 지은 사람을 교도소에서 교화시켜 착한 품성의 사람으로 만들거나, 기술을 가르쳐 사회에 나가 재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르면 효과적인 교화를 위해 일정 기간 이상의 징역형은 불가피하다.

사회보호이론은 언제라도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흉악범들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범죄자들을 일정 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이런 기능을 강조하다 보면 범죄자들이 오랫동안 사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장기 징역이나 종신형 등 형벌이 중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대법원 전경
어느 이론에 의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형벌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하지만 엄벌주의가 범죄율을 낮춘다는 근거는 없으며, 엄벌주의만을 강조하다 보면 죄에 비례하지 않는 처벌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해 적절한 형벌의 수준을 정하는 양형은 실제 형사재판에서 유무죄 판단보다 오히려 더 힘든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는 과거 법원의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고 관대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이에 형벌의 목적을 고려해 각 범죄의 사실관계에 따라 가급적 편차 없이 적절한 양형을 찾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이어져 왔다.

툭하면 美와 비교…韓 양형 정말로 가벼운가

우리나라 양형이 비교적 가볍다는 지적의 근거로 단골처럼 등장하는 것이 미국과의 비교다. 유사한 범죄에 대해 미국은 강력히 처벌하는데 우리는 그에 비하면 너무 관대해 문제라는 식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필자가 2011년경 미국 로스쿨에서 유학하며 형사 정책에 관한 수업을 들을 때 담당 교수가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의 인구 대비 재소자 비율 통계를 보여준 적이 있다. 2010년 통계를 보니 미국 재소자는 인구 10만 명당 730명의 비율로 나타난다. 한국(97명), 일본(55명)뿐 아니라 양형이 비교적 세다고 하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재소자 비율과도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이다.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해봐도 약 5배 이상 높다. 특히 종신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재소자 9명 중 1명에 달할 정도로 매우 높다. 당시 교수는 “이 통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 국민이 다른 OECD 국가보다 5배 이상 악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일까? 반대로 미국 사회가 다른 국가보다 5배 이상 안전한 것일까? 둘 다 아니라면, 미국의 양형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비합리적으로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화두를 던졌고, 이는 아직까지도 필자의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전경/로이터통신
형벌의 목적 중 응보 이론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은 다소 다른 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강력한 법제를 확립해 문화와 관습이 모두 다른 다민족 이민자들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는 동기가 컸다. 개척의 역사와 총기 소지의 허용 등 요인으로 공동체에 위협이 되는 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 역시 절실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공권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해졌고, 자연스럽게 범죄에 대한 양형 역시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가혹한 형벌과 재소자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및 폐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미국 법조계에서도 이에 대한 반성과 개선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그런데 정작 우리는 아직도 걸핏하면 미국의 양형을 금과옥조처럼 들먹이며 한국의 양형이 지나치게 가볍다고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서 때문에 실제 법정형과 선고형이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나치게 관대했거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던 양형은 당연히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사형, 무기징역이 아닌 이상 어지간한 형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국민 감정만 생각하기엔 양형에 고려돼야만 하는 요소가 너무나도 많다. 양형이 관대하다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형사재판을 받게 되면 형이 과하다고 불평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이젠 흔한 일이기까지 하다. 양형이 높아질수록 범죄가 감소한다는 유의미한 통계도 없는 상황에서, 교정 행정으로 인한 비용과 노동인구 감소 등 사회적 비용에 대한 합의 없이 미국 사례만을 들며 법정형과 선고형을 높여 놓고 보는 것은 가급적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을 수료한 후 공중보건의사로 근무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판사로 임관하여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등 법원 주요 요직을 거쳤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LL.M)에서 미국회사법을 공부하였고, 의료인 출신이면서 부장판사 경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변호사로서, 의료인과 법관 출신으로서의 전문성을 살려 법무법인 세종에서 주요 민형사 송무, 기업분쟁, 금융분쟁, 가상자산, 제약바이오 사건 등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