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삼청동엔 바느질로 꿰맨 하늘, 추상으로 만든 꿈이 있다

지금 '한국 미술 대세'
1980년대생 여성 작가들의 전시

안현정, 백아트에서 '틈, 연결 너머'
이진한, 갤러리현대서 '루시드 드림스'
안현정의 백아트 개인전 전경. /백아트 제공
지금 한국 미술은 바야흐로 ‘1980년대생 여성 작가’의 시대를 맞고 있다. 영국 런던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과 글로벌 화랑 타데우스 로팍에서 각각 전시중인 이미래(36)와 정희민(37)을 필두로, 이진주(44)· 우한나(36)·김조은(35) 등 작가들에게 해외 미술관과 갤러리들의 전시 제안이 쏟아지고 있어서다. 지금 서울 삼청동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두 작가도 같은 그룹에 속한다. 백아트에서 개인전 ‘틈, 연결 너머’를 열고 있는 안현정(38)과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루시드 드림스’를 열고 있는 이진한(42)이다.

백아트에서 전시를 연 안현정은 미국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작품 활동 중인 작가다. 구름이 떠 있는 하늘, 비행기 창 밖으로 바라본 하늘, 달과 별이 뜬 밤하늘 등 하늘을 추상화한 다채로운 색의 작품을 제작한다. 제작 과정이 특이하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게 아니라 조각난 천을 재봉해 캔버스를 채운다. 그래서 작품 속 형상들을 구분하는 윤곽선은 캔버스 표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살짝 파여 있다. 그 파인 자국, 즉 ‘틈’이 작품의 특별함을 만들어낸다.
안현정의 ' Petit Rendezvous_ Orange and Yellow'(2024). /백아트 제공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공부를 할 때까지만 해도 작가는 일반적인 추상 회화를 그렸다. 그러다 2018년 재봉에 눈을 떴다. 미국 메사추세츠 현대미술관 스튜디오 작업실을 공유하던 동료 미국 작가들이 재봉으로 작업하던 방식,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만들어주시던 기억 등이 계기였다.

재봉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현대적이고 단순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도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유선 전시기획자는 “형상들을 ‘선을 그어서’ 나눈 게 아니라, 나눠져 있던 것을 ‘꿰매서’ 한 공간에 배치했기에 특별한 느낌이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작 중 상당수가 개막 이전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는 내년 1월 18일까지.
이진한의 '진정한 장소'(2024). 갤러리현대 제공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을 진행 중인 이진한은 영국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추상화를 그린다. 학부를 졸업한 뒤 런던 세인트 마틴과 골드스미스에서 석사 학위, 2021년 런던 UCL 슬레이드 미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런던에서 15년을 보냈다. 오랜 시간 해외에 체류하며 미술을 공부하다가 언어의 장벽, 소외감, 연인과의 이별, 외국인과의 뜻밖의 교감과 친밀함 같은 것들을 그림에 담게 됐다. 작가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기억을 그림으로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예를 들어 그의 작품 ‘샤워 생각’은 샤워하다가 떠오른 좋은 생각을 뜻하는 ‘Shower Thought’라는 신조어를 그린 작품이다.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여러 생각과 영감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지하 1층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에서는 어머니의 발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친밀감을 표현했다. 그림들 전반에 해와 달, 발, 바이올린, 나무, 꽃, 붓, 연필, 책 등 여러 요소들이 서로 겹쳐 어우러지면서 전시 제목인 ‘루시드 드림’(자각몽)처럼 꿈 속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낸다. 전시는 12월22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관람객이 이진한의 '재판관과 첼리스트'를 바라보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