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동안 안봤으면 남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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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10년 얼굴 안 보고 살았으면 남 아니에요?" 드라마 ‘조립식 가족’에서 윤주원이 경찰서 조사 중 가족처럼 지내다 떨어져 10년만에 나타난 김산하를 ‘옛날 동거인’이라고 칭하면서 덧붙인 설명이다. 그렇다. 10년이면 가족도 남이 될 수 있고, 옛날 동거인도 될 수 있다.이는 법률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권리를 가지게 된 때로부터 오랫동안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권리주장을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민법 제2조 '신의성실의 원칙'에서 파생된 실권 또는 실효의 법리인데, 판례는 “본래 권리행사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리자가 장기간에 걸쳐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상대방이 이미 그의 권리를 행사하지 아니할 것으로 믿을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게 됨으로써 새삼스럽게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결과가 될 때 그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한다(대법원 2005. 7. 15. 선고 2003다46963 판결 등).
그리고 판례는, 고용관계의 존부를 둘러싼 분쟁은 그 당시의 경제적 정세에 대처하여 최선의 설비와 조직으로 기업활동을 전제하여야 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임금 수입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신속히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실효의 원칙이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이러한 법리에 기초하여 해고시점으로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아무 말도 안하다가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어 소각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9. 26. 선고 2023가합34111 판결).그런데 해고사건 이외에 근로자파견관계 분쟁에서도 실효의 원칙이 문제될 수 있다. 근로자파견관계 분쟁은 수급업체 직원이 도급업체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또는 고용의 의사표시 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비교적 최근인 1997년 제정되어 그 동안은 실효의 원칙 적용이 논의되는 경우가 적었다. 그러나 이제 파견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고, 한참 전에 발생한 권리의 확인 또는 이행을 구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십수년 전에 잠깐 협력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이미 근로자파견관계 관련 분쟁을 겪었다가 마무리가 되어 이제 다 정리가 된 줄 알았던 회사로서는 갑자기 나타나 십수년 전의 일을 꺼내서 권리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당황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도대체 어느 범위까지 소제기를 당하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심각한 법적 불안정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장을 떠난 지 십수년이 되었고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해 오다가 갑자기 돌아와 권리주장을 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많다.
관련하여, 파견법 위반에 따른 효과가 2007. 7. 1. 이후 고용간주에서 고용의무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이후 발생한 권리인 고용의무 이행청구권에 대하여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어 장기간의 권리불행사에 대하 규율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용간주가 적용되는 시기에는 소멸시효의 적용이 불가능하여 실효의 원칙으로 규율할 필요가 크다.일단 대법원은 일부 사례에서 실효의 원칙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 적용에 관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다221638판결). 그러나 그러한 사례들은 권리를 과거에 발생하였으나, 계속 사업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경우로서 과거의 동거인이 아니라 현재의 동거인이기도 한 사례이다.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에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이와 달리 십수년 전에 사업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갑자기 나타난 경우, 회사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실효의 원칙이 적극적으로 적용해 이젠 남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법률의 형식적 적용보다는 현실적으로 존재한 장기간의 사실적 상태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2007. 7. 1. 이후 권리가 발생한 경우에는 10년의 소멸시효 적용을 받는 반면 그보다 더 전에 권리가 발생한 경우 아무런 제한 없이 권리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파견법의 개정을 전후한 사건들 사이에 불균형을 초래할 뿐 아니라 파견법의 개정 목적과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무엇보다 위와 같은 경우에까지 권리주장이 허용된다면 사업장에서 수행되는 업무와 완전히 단절되어 십수년 간 전혀 무관한 생업에 오랜 기간 종사하여 왔던 이를 정규직으로 즉시 채용하고 그 정년을 보장하여야 하며, 그 동안 완전히 단절된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에 대하여 거액의 임금차액을 일시에 지급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매월 급여를 받아온 기존 근로자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겪게 될 사기 저하와 상대적인 박탈감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그리고 판례는, 고용관계의 존부를 둘러싼 분쟁은 그 당시의 경제적 정세에 대처하여 최선의 설비와 조직으로 기업활동을 전제하여야 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임금 수입에 의하여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신속히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영역에서는 실효의 원칙이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다30118 판결).
이러한 법리에 기초하여 해고시점으로부터 상당한 기간 동안 아무 말도 안하다가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어 소각하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4. 9. 26. 선고 2023가합34111 판결).그런데 해고사건 이외에 근로자파견관계 분쟁에서도 실효의 원칙이 문제될 수 있다. 근로자파견관계 분쟁은 수급업체 직원이 도급업체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또는 고용의 의사표시 청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이 비교적 최근인 1997년 제정되어 그 동안은 실효의 원칙 적용이 논의되는 경우가 적었다. 그러나 이제 파견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고, 한참 전에 발생한 권리의 확인 또는 이행을 구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십수년 전에 잠깐 협력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고,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었다고 하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특히 이미 근로자파견관계 관련 분쟁을 겪었다가 마무리가 되어 이제 다 정리가 된 줄 알았던 회사로서는 갑자기 나타나 십수년 전의 일을 꺼내서 권리주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당황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도대체 어느 범위까지 소제기를 당하게 될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심각한 법적 불안정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업장을 떠난 지 십수년이 되었고 그 동안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영위해 오다가 갑자기 돌아와 권리주장을 하는 것이 용인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많다.
관련하여, 파견법 위반에 따른 효과가 2007. 7. 1. 이후 고용간주에서 고용의무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이후 발생한 권리인 고용의무 이행청구권에 대하여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어 장기간의 권리불행사에 대하 규율이 가능하다. 그러나 고용간주가 적용되는 시기에는 소멸시효의 적용이 불가능하여 실효의 원칙으로 규율할 필요가 크다.일단 대법원은 일부 사례에서 실효의 원칙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 적용에 관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다221638판결). 그러나 그러한 사례들은 권리를 과거에 발생하였으나, 계속 사업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경우로서 과거의 동거인이 아니라 현재의 동거인이기도 한 사례이다. 실효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것에 수긍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이와 달리 십수년 전에 사업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갑자기 나타난 경우, 회사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실효의 원칙이 적극적으로 적용해 이젠 남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법률의 형식적 적용보다는 현실적으로 존재한 장기간의 사실적 상태가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한 2007. 7. 1. 이후 권리가 발생한 경우에는 10년의 소멸시효 적용을 받는 반면 그보다 더 전에 권리가 발생한 경우 아무런 제한 없이 권리주장이 가능하다는 것은 파견법의 개정을 전후한 사건들 사이에 불균형을 초래할 뿐 아니라 파견법의 개정 목적과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무엇보다 위와 같은 경우에까지 권리주장이 허용된다면 사업장에서 수행되는 업무와 완전히 단절되어 십수년 간 전혀 무관한 생업에 오랜 기간 종사하여 왔던 이를 정규직으로 즉시 채용하고 그 정년을 보장하여야 하며, 그 동안 완전히 단절된 인생을 살아왔음에도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에 대하여 거액의 임금차액을 일시에 지급하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실제로 근로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 동안 성실하게 근무하면서 매월 급여를 받아온 기존 근로자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겪게 될 사기 저하와 상대적인 박탈감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