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R&D인력 근무시간 유연화' 수긍…"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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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野 합의 급물살 기대고연봉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예외를 인정해주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 논의가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11일 반도체 R&D 인력에 유연한 근로시간을 허용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같은 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합리적인 (근로시간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며 규제 완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에 제1야당 대표가 공감하며 여야 합의 처리 기대가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민주당 내 강경파와 노동계의 반발은 넘어야 할 산이다.
경총 간담회서 필요성 인정
"근무시간 일률적으로 정하면
연구개발 효율 떨어져 개선 필요"
주 52시간 예외 '핀셋' 적용 가능성
민주 강경파·노동계 반발이 관건
이 대표는 이날 서울 대흥동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찾아 손경식 경총 회장 등과 간담회를 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집중적인 R&D가 필요한 영역에서 근로시간을 통제해놓으니 효율성이 떨어지고, 노동자 자신에게도 불리하다’는 주장이 있다”며 “실제로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런 부분이 있다면 필요한 (근로시간) 계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다만 “전체 제도를 통째로 바꿔버리면 제도가 잘못 사용돼 노동환경이 전체적으로 후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실현 가능한 합리적인 개선을 해내는 것에 누가 반대하겠냐”고 말했다.
이 대표의 발언은 R&D 인력에 ‘핀셋’으로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R&D 분야 근로시간 규제 개선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적용 대상이나 완화 정도 등은 정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통화에서 “현재 시행되는 탄력근무제를 통해서도 산업계 요구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가 필요한 것인지, 필요하다면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 적용돼야 하는 것인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반도체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당내 정책통인 김태년 의원도 “반도체에 국한해서 규제 적용을 풀어줄 것인지, 다른 전략 산업에 대해서도 풀어줄 것인지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R&D 역량이 기술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첨단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특히 반도체업계에서 이 같은 요구가 많았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주 52시간 규제에 발이 묶인 사이 엔비디아, TSMC 등 글로벌 경쟁 기업들은 R&D에 막대한 시간을 집중 투입하며 기술력을 확보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산업계 요구를 반영해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도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인 이철규 의원은 이날 반도체 R&D 인력에 한해 주 52시간제 적용 예외를 인정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의원은 “각국이 ‘반도체 전쟁’이라고 할 만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며 “이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재정적,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당사자 간(노사 간) 합의가 이뤄졌을 때 주 52시간 규제 예외가 탄력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연내 정기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이 처리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고동진 의원은 이달 초 반도체뿐만 아니라 2차전지·디스플레이·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 R&D 인력은 주 52시간제 적용을 제외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여야 지도부 사이에선 R&D 분야 근로시간 규제 완화 필요성에 공감대가 이뤄졌지만, 민주당 내 노동계 출신을 중심으로 반대 기류가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주영 의원은 “한 번 예외를 인정하면 그 예외가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R&D 직군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진 의장도 “노동자 동의 없이 (규제 완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국민의 휴식권과 건강권, 행복추구권 보장과 명백히 상반되는 제도”라고 주장했다.
한재영/박주연/곽용희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