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트럼프가 이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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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민 한국뉴욕주립대 교수미국 대통령 선거 전날 강의실 복도에서 앤절라와 우연히 마주쳤다. 앤절라는 지난 학기에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인데 환경, 여성, 낙태 등 진보적 이슈에 열정적인 민주당 지지자다. “앤절라! 넌 해리스 후보를 지지하겠구나?”라고 물었더니 앤절라는 고개를 저으며 “해리스는 말을 계속 바꿔서 신뢰가 안 가요. 차라리 트럼프가 나아요”라고 답했다. 미국 시민권자는 한국에 있더라도 사전 우편투표를 할 수 있다. 앤절라는 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여서 당연히 한국에서 우편으로 사전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번에는 기권을 선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표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를 크게 이겼다. 줄리아 로버츠, 비욘세,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스타 연예인들이 대거 나서서 해리스를 지원했으나 소용없었다. 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건 무엇보다 경제다. 미국은 4년 전보다 물가가 엄청나게 올랐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흑인들도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생활비 부담으로 살기가 힘들어지자 해리스에서 트럼프로 지지율이 10%나 빠져나갔다.미국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경제 다음으로 중요한 이슈가 이민자 정책이라고 답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저소득층에서도 민주당 정부가 불법이민자에게 무료 휴대폰과 주택을 제공하는 것에 화가 많이 났다고 한다. 민주당 정부의 느슨한 국경정책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던 히스패닉(남미계) 유권자들조차 이젠 더 이상 불법이민자를 받지 말자며 트럼프 쪽으로 지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를 지지한 히스패닉 유권자는 4년 전 조 바이든 때보다 약 15%나 줄었다.
해리스가 우위를 점하던 낙태 문제는 선거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TV 토론에서 트럼프는 여성의 낙태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낙태 문제를 각 주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비교적 잘 방어했다.
선거에서 후보자의 이미지는 굉장히 중요하다. 앤절라 학생의 말처럼 해리스가 여러 정책에 대한 입장을 바꾸며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이자 실망한 젊은 유권자 지지율이 4년 전에 비해 6% 정도 줄었다. 민주당 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이 앤절라 사례처럼 기권을 택했다고 한다.
미국민은 부유하고 강한 미국을 원한다. 트럼프는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로 강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총알이 귀에 스쳐 피를 흘리면서도 주먹을 치켜들며 싸우자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고 괴팍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불안한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민은 약한 이미지의 해리스보다 더 세고 강한 이미지의 트럼프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