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로당 가는 노인 주는데, 국비 지원 늘리자는 정치권

노인 지원 실버 포퓰리즘 성행
복지지출 구조조정도 검토해야

허세민 경제부 기자
“노인 지원 사업을 건드리면 ‘매정하다’는 비판이 쏟아집니다. 감액은 엄두도 못 내면서 끝도 없이 예산을 늘리자는 것이죠.”

내년도 나라 살림을 심의하는 국회 예산 시즌이 본격화한 11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최근 공개한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 고령층을 위한 국책 사업 강화 권고안이 담긴 것을 보고 나서다. 국회의원이 정부 예산안을 심사할 때 기초 자료가 되는 이 보고서에는 경로당에 국비로 지원하는 여름철 냉방비를 늘리고 양곡비(쌀값) 외에 부식비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폐지를 줍는 환경지킴이, 교통도우미 등 공익형 노인 일자리 활동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제안도 포함됐다.경로당은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는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이유로 경로당에 지원하는 냉·난방비와 양곡비 사업 규모(내년 874억7900만원)를 올해보다 74억7600만원(9.3%) 늘려 잡았다. 냉·난방비 지원액은 그대로 두고, 양곡비 지원금을 증액했다.

하지만 보건복지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냉방비 지원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폭염이 극심해진 만큼 냉방비 지원을 현행 2개월(7~8월)에서 3개월(6월 중순~9월 중순)로 늘리거나 지원 단가를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고령화에 따라 가만히 있어도 폭증하는 복지 지출에 대한 구조조정 논의는 쏙 빼놓은 채 노인 관련 예산을 늘리자고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등 경직성 지출이 대부분인 보건복지부의 내년 예산 규모는 올해(117조445억원)보다 8조6120억원(7.4%) 증가한 125조6565억원(정부안 기준)에 달한다.경로당 냉방비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은 경로당 이용률이 예전만 하지 않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는다. 최근 복지부가 발표한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로당 이용률은 2020년 28.1%에서 지난해 26.5%로 줄었다. 경로당 대신 동호회 활동을 늘리고 있는 게 요즘 노인들이다.

‘공익형 노인 일자리의 활동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보건복지위의 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11개월인 공익형 노인 일자리 기간을 연장할 경우 사용자 측은 기간제근로자법에 의해 노인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의무가 생겨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노인이 된다. 하지만 ‘노인’이라는 단어가 ‘무적의 논리’가 될 수는 없다. 국회는 ‘예산 증액’이라는 손쉬운 선택을 하기 전에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