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이미지가 전부인가, 보는 것만이 제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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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만지지 마시오.’
이미지 이후에는 무엇이 있나
미술에서 감각의 위계에 대해 질문하는 《AFTER IMAGES》
베를린 율리아 스토셰크 재단에서 2025년 4월까지 열리는 그룹전
이 문구는 미술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경고로 우리는 대부분의 미술작품을 마주할 때 눈으로 바라본다. 또한 미술은 주로 시각 예술이라고 불릴 정도로 시각이란 감각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의 감각론 이래로 지속된 지배적 지식 체계로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동물이 지닌 촉각과 미각을 넘어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시각, 청각, 후각을 가지고 있으며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순서로 감각은 위계를 갖는다고 한다. 이 같은 전통적 감각의 위계에 대해 그룹 전시 <AFTER IMAGES>는 질문을 던진다. 시간 기반의 예술인 영화와 비디오 혹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처럼 비교적 새로운 매체에 특화된 전시를 주로 선보이는 율리아 스토셰크 재단(Julia Stoschek Foundation)에서 2024년 9월 12일부터 2025년 4월 2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는 한국계 작가인 아니카 이(Anika Yi), 로터스 강(Lotus L. Kang)을 비롯해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 폴 챈(Paul Chan), 로사 바바(Rosa Barba) 등 참여 작가 16명/팀의 3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포함한다. 참여 작가 명단을 보며 어떻게 이 전시가 ‘이미지 이후’를 보일지 궁금증을 가지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눈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로터스 강의 <폭포에서(In Cascades)>였다. 마치 ‘피부’를 연상케 하는 필름 재질의 매체는 촉감을 상상하게 하며 감각을 일깨우고, 시간에 따라 노출되며 변하는 필름으로 공간과 관객의 자취를 담아내고 있었다.그리고 점차 전시는 시각에 더해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게 하며 전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출신 작가 데이비드 메달라(David Medalla)의 작품은 끊임없이 생성되는 비누 거품으로 고정되지 않은 형상을 만들고, 만지면 사라지는 존재를 체험하게 하며 보다 경험적인 경로로 이끌었다.더 나아가 맞은 편에 있는 <구름 만지기(Touching Clouds)>는 구름이라는 추상적 대상을 데이터로 형상을 입혀 실체감을 느끼게 하며 실재와 가상 사이에서 여러 감각을 탐색하게 하였다. 더불어 확장현실(XR) 기기를 착용하고 체험하는 관객은 마치 일종의 퍼포먼스를 실행하는 듯 보이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또 다른 감각을 제공하였다.전시에서 가장 감각적인 공간을 구성한 작품 중 하나는 아티스트 파라나즈 하탐(Farahnaz Hatam)과 작곡가 콜린 해크랜더(Colin Hacklander)가 팀을 이룬 레이버(LABOUR)의 <침묵의 탑(Tower of Silence)>이다. 7개의 받침대와 뱀의 형상을 한 설치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시신을 침묵의 탑 위에 두어 독수리가 먹게 방치하고 자연적으로 사라지게 한 3000년 전 조로아스터교의 장례 의식을 참조하였다. 30분마다 빛과 소리, 움직이는 설치물이 만드는 복합적 감각을 통해 여러 감각이 활성화되는 경험을 하며 동시에 삶의 유한함이 주는 두려움과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하였다.한편, 1층과 2층의 공간을 잇는 작품인 기슬레인 르웅(Ghislaine Leung)의 <모니터(Monitors)>는 1층 전시장 입구 공간의 소리와 움직임을 기록해 2층의 모니터로 보여주며 실시간으로 경험되는 감각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작품 주위에 설치된 다른 작품들이 제공하는 시각뿐 아니라 청각적, 운동적, 체험적, 촉각적 감각의 자극을 함께 느끼며 예술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으로 수렴하는 경험이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AFTER IMAGES>는 이미지를 본다는 것의 의미, 시각성에 부여된 과도한 의미에 대해 청각, 촉각, 후각은 물론 고유 감각을 활성화하며 질문을 던지고,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감각하는지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그렇지만 전시 제목처럼 이미지 ‘이후’, 혹은 이미지 기반의 동시대 이후의 예술을 상상하고 제안하기보다 시각 외 다른 감각을 환기하는 데 그치며 아쉬움을 주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지 이후’보다 ‘이미지 너머’가 더 어울리는 전시 제목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변현주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