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파도 헤치는 추장 모아나의 근육과 머리칼 만든 '금손'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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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2’ 제작 참여한 윤나라 애니메이터 인터뷰“내가 갈 길을 알아. 나는 모아나!(I know the way. I am Moana!)”
드림웍스 6년 일한 뒤 군 복무 후 디즈니 입성
8년 만에 공개되는 속편 '모아나2' 작업 참여
‘겨울왕국’ 시리즈와 ‘주토피아’ 등에도 숨은 주역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이하 디즈니)가 애니메이션 ‘명가(名家)’로 불리는 건 1923년 설립된 이후 단순히 1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버텼기 때문만은 아니다. 획기적인 기술과 깊은 스토리텔링이 만난 애니메이션이라는 디즈니 예술의 핵심은 세대와 성별, 문화를 초월한 ‘공감의 힘’이다. 이를 위해 디즈니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마저 과감하게 버리는 ‘창조적 파괴’를 시도하며 주제부터 캐릭터에 이르는 혁신적인 장면들을 선보여 왔다.1937년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소개한 이후 수많은 ‘디즈니 프린세스 동화’가 탄생한 와중에 튀어나온 모투누이섬 부족장의 딸 모아나가 대표적이다. 모아나는 현실세계 속 생산노동과 동떨어진 고귀한 생활을 하거나, 언젠가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기다리거나, 운명에 순응하고 사랑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공주 클리셰’를 깨뜨린 ‘여성 영웅 서사’를 보여준다. 흰 피부와 고운 머릿결 대신 강렬한 태양 볕 아래 거친 파도에 뛰어드는 폴리네시아 문화권의 까무잡잡한 피부와 곱슬머리마저 재밌다. 비슷한 시기 등장한 ‘겨울왕국’(2014) 엘사, ‘주토피아’(2016) 주디와 함께 디즈니가 서양·남성 중심의 20세기적 가치에서 눈을 돌려 시대정신을 포착한 ‘100년 명가’로 가는 해답이다.이런 모아나가 2016년 이후 8년 만에 또 한 번 먼바다로 모험을 떠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시장이 들썩인다. 티저 예고편 공개 하루 만에 1억 7800만 조회수를 기록하더니, 올해 글로벌 영화계 최고 흥행작인 ‘인사이드 아웃 2’를 뛰어넘어 글로벌 사전 예매량을 기록했다. 불황에 신음하는 국내 극장가에도 오는 27일 개봉을 예고하며 ‘글래디에이터2’와 함께 관객을 끌어모을 화제작으로 기대를 모은다. 흥미로운 점은 ‘모아나2’ 제작현장에 K-크리에이터로 불리는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있다는 것. ‘모아나2’뿐 아니라 전편부터 ‘겨울왕국’ 시리즈, ‘주토피아’까지 모두 참여한 디즈니 명가의 숨은 주춧돌이다. 윤나라 디즈니 애니메이터에게 ‘모아나2’ 개봉을 계기로 디즈니의 남다른 인기비결과 감상포인트를 들어봤다.
▶‘모아나’는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모아나적 사고’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번엔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까요.“‘모아나2’는 전편과 유사한 가족, 모험, 영웅적 행위에 대해 다뤄요.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16살 소녀’ 모아나가 아닌, ‘모투누이 추장’ 모아나가 용감한 지도자로서 넓은 태평양의 새로운 길을 탐험하고 괴물들과 맞서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저는 주로 모아나와 마우이 캐릭터를 만드는 데 집중했습니다. 또 눈에 띄는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하는데, 그 작업도 일부 맡았습니다.”▶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누구나 공감하는 스토리텔링’을 함축하고 있는 건 캐릭터죠. 그간 어떤 캐릭터를 만들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엘사, 안나, 올라프(이상 겨울왕국), 닉과 주디(이상 주토피아), 미라벨(엔칸토) 등 꿈 같은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디즈니에 오기 전 드림웍스에선 포(쿵푸팬더), 슈렉 같은 캐릭터를 애니메이션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꼽자면 엘사일 것 같아요. 엘사는 겉으론 완벽해 보여 교만할 수도 있지만, 주위 사람을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자상한 캐릭터죠. 이런 모습들에 많이 공감하며 작업을 했습니다.”▶‘애니메이션 명가’에서 주요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된 한국인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드림웍스에서 6년 간 일하다 군 복무를 위해 휴직했습니다. 2013년 전역할 앞두고 디즈니의 ‘페이퍼맨’이라는 단편 영화가 오스카상(아카데미 시상식)을 받는 걸 봤어요. 디즈니 전통 2D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이 반영된 3D 애니메이션이 너무 멋졌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제 안의 열정이 살아났습니다. 입사한 후엔 들어보지도 못했던 ‘겨울왕국(Frozen)’이라는 영화를 작업하게 될 거란 얘기를 들었는데, 처음엔 그 이름이 너무 촌스럽다고 느낀 기억도 나요.”▶실제로 느낀 디즈니만의 차별적인 기술력이 있다면요.“독특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디즈니는 끊임없는 기술개발에 힘써요. 당장 ‘모아나’에선 근육질에 다양한 동물로 변신하는 캐릭터인 마우이를 만들기 위해 근육까지 애니메이션해야 했어요. ‘겨울왕국 2’에선 보이지 않는 정령인 게일이란 캐릭터가 나오는데, 나뭇잎 몇 장과 주위 물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투명 캐릭터를 연출할 기술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늘 새로운 도전이 주어지지만, 기술팀과 애니메이터 협업이 디즈니의 마법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어린이만의 콘텐츠는 아닙니다. 애니메이션 중심에 있는 디즈니가 100년 넘게 사랑받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비결도 궁금합니다.
“디즈니가 고유의 예술성과 높은 품질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지만, 제게 있어선 ‘옳고 그름’의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해왔어요. 어린 시절 해외를 자주 이사 다니며 살았고 언어도 모르는 새로운 문화 환경에서 힘든 경험이 많았는데, 부모님이 매주 비디오 대여점에서 디즈니 만화 영화를 빌리는 걸 허락했던 기억이 나요. 교육적이고 도덕적이며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아이들은 물론 자녀를 위해 영화를 고르는 부모님의 입장에서도 중요한 요소죠. 얼핏 보기엔 단순한 캐릭터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만화에 불과할 수 있지만, 아름다운 모험으로 얻는 추억과 교훈이 세대를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별함이라 생각해요.”▶최근 음악부터 영화, 문학에 이르기까지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한국의 문화와 트렌드를 녹여낸 디즈니 작품을 볼 가능성이 있을까요?“어린 시절 서양 친구들 사이에서 힘들었던 적이 많았는데, 지금은 음악 음식 문학 기술 영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알려지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기뻐요. 저 역시 디즈니에서 한국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길 바라고 있어요. 그날이 온다면 프로젝트의 일부로 꼭 함께하고 싶습니다.”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