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버텨주지" 탄식…증권맨들 첫사랑 '미스리' 떠난다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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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전성기' 이끈 미스리의 퇴장'여의도 터줏대감'으로 증권가 역사를 함께 써 온 메신저 서비스 '미스리'가 출시 26년 만에 서비스를 마칩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지" 증권맨들 '탄식'
텔레그램·카톡 등 사용자 급증 영향
1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전날 미스리 운영사인 미소앤클라우드는 다음달 11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공지했습니다. 종료일을 기준으로 미스리 메신저와 대화방 전체가 사라집니다.사측은 "1998년 서비스 출시 이후 고속성과 안정성, 대량 동시전송성 등 메신저의 사용성 확장에 고민하면서 서비스를 개선해 왔다"며 "최근 더는 이용자분들께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고 보고 종료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간 미스리메신저를 사랑해 준 이용자에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사 인사와 종료에 대한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미스리' 결국 역사 속으로…증권맨들 "너무 아쉽다"
한때 여의도 증권사 직원이라면 누구나 필수로 깔았던 '스타 메신저'였지만 퇴장은 조용합니다. 미스리를 쓰는 사람들이 확 줄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미스리 전성기를 아는 과·차장급 이상 직원들은 메신저의 퇴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전날까지도 미스리 메신저를 사용했다는 경력 18년차의 한 증권사 홍보실 부장은 "Fn메신저(EzQ메신저)에 이어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스리마저 사라지다니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며 "신입사원 때부터 동기들과 정보 공유 창구로 활용했다. 미스리 때문에 울고 웃었던 날들이 많았지만 그 순기능이 여의도에 기여한 부분은 정말 컸다"고 말했습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여의도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메신저의 끝을 보게 되다니 직원들과 너무 안타까워 했다"고 전했습니다.다만 '투자 정보가 넘치는' 지금 메신저의 세대 교체는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업계 분위기가 텔레그램을 이용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며 "미스리·네이트온 등 증권 메신저가 더 익숙해서 카카오톡과 혼용해 왔는데, (서비스 종료로) 바뀐 채팅 환경에 적응해야 할 듯하다"고 말했습니다.한 증권사 채권 담당 임원은 "채권 파트에서는 업무 특성상 네이트온, 미스리 메신저를 쓰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마저도 우리는 최근 텔레그램으로 소통창구를 일원화했다"며 "업체와 투자자들이 텔레그램을 많이 써서 우리도 덩달아 텔레그램으로 주 채널을 옮기게 됐다. 미스리 메신저 활용도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상황에 온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텔레그램·카톡으로 '우르르'…입지 강화 쉽지 않아
미스리는 '증권가 지라시'를 탄생시킨 온상지이기도 합니다. 2000년에 접어들면서 여의도 정보통들이 미스리를 통해 주식 정보와 정·재계·연예계 각종 지라시를 주고받기 시작했거든요. 지금은 카카오톡·텔레그램 등에서 사설 정보지, '받은글'을 붙여 책임소지를 불분명하게 한 가십성 정보들을 수많은 사람이 받아볼 수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소수의 증권가 사람들만 미스리를 통해 받았습니다. 메신저로 주가에 영향을 미칠 만한 짤막한 글을 투자자·펀드매니저들에게 퍼나르는 '메돌이'라는 개념도 이 때 생겼습니다. (관련 기사: 여의도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영화 '작전' 속 그녀 '미스리' [돈앤톡])미스리는 받는 이를 그룹핑(모으기)해 주가 정보를 빠르고 대량으로 전달하는 게 필살기입니다. 인적사항을 넣지 않고도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데다, 대화내용이 서버에 남지 않고 사용자 컴퓨터에서도 일정 한도를 초과하면 순차적으로 지워집니다. 지라시 최초 유포자들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인데요. 하지만 같은 이유로 주가조작을 노린 작전세력들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습니다.하지만 최근 몇 년간 미스리는 존재감을 입증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모바일 메신저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용 메신저로서 차별화를 꾀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스리 실이용자 계정이 꾸준한 감소세를 거듭하던 끝에 종료를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현 미스리 운영사인 미소앤클라우드 측은 전화가 닿지 않았습니다. 미스리 창립멤버이자 개발 총괄이었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이름이지만 미스리는 제 첫사랑에 대한 애칭이었다"며 "체질 개선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찾길 바랐는데 이용자 수가 줄어 여건이 어려웠던 듯하다.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시인의 시 '낙화' 첫 문장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안녕'을 선언한 미스리의 뒷모습은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여의도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기억될 겁니다. 모두에게 첫사랑이 그렇듯이요.
신민경/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