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DNA 지닌 파이퍼 하이직 '레어 샴페인'…금빛 심장을 가다

[이진섭의 음미(吟味)하다]

파이퍼 하이직 레어 본사 방문기

포도가 연주하는 교향곡 '레어 샴페인'

카밀라 카베요, 두아 리파, 로제, BTS 진 등
세계적 셀럽들 즐겨 찾아

샴페인 마에스트로의 통찰력, 정교함과 미학 필요해
프랑스 랭스에 위치한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 본사 / 사진. © 이진섭
샴페인 버블을 형상화한 구조물, 금빛 '파이퍼 하이직 레어' 본사

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 반을 달려 샹파뉴 지방의 랭스로 향했다. 샴페인의 본고장에서 18세기 말부터 ‘왕실의 샴페인’이라 불린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의 본사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스파클링 와인 중 엄격한 제조 공정을 거쳐 생산된 발포성 포도주 중 이곳 샹파뉴 지방에서만 생산된 것을 ‘샴페인’이라 한다. 본문에서 표기의 통일성을 위해 지역은 ‘샹파뉴’, 이곳에서 생산된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이라고 하겠다.

“어제 막 수확이 끝났어요. 샹파뉴 전 지역이 바빴고, 이제 샴페인과 함께 남은 햇살을 즐겨야죠.”

파이퍼 하이직 본사로 들어서자마자, 레어 샴페인 총괄 디렉터 모드 라빈(Maud Rabin)이 환대해주었다. 샴페인의 버블을 형상화한 금빛 철제 구조물이 유리 건물 전체를 더욱 빛나게 했다. 로비를 중심으로 '레어 샴페인'과 '파이퍼 하이직 샴페인'이 구역을 나눠 통유리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 로비 / 사진. © 이진섭
레어 샴페인(Rare Champagne)은 세계적인 샴페인 하우스 파이퍼 하이직에서 생산하는 최상급 샴페인이다. 포도 작황이 좋은 해에 그랑 크뤼(Grand Cru)와 프리미에르 크뤼(1er cru)에서 생산된 포도만을 엄선하여, 생산 연도(빈티지)를 붙여 고객에게 내놓는, 말 그대로 레어한 샴페인이다. 샴페인 병 모양 역시 아름다운 병을 감싼 금빛 티아라가 시그니처다.
레어 샴페인 디렉터 ‘모드 라빈 (Maud Rabin)’ / 사진. © 이진섭
여왕의 DNA를 가진 최고 럭셔리 샴페인
1885년 La Cuvée du Centenaire (the centenary vintage)가
레어 샴페인의 시작

독일 베스트팔렌 출신의 플로렌스 루이 하이직(Florens Louis Heidsieck)이 프랑스 샹파뉴 지방 랭스로 이주해 1780년부터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785년에 ‘여왕에게 어울리는 여왕을 위한 샴페인’을 만드는 목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샴페인 하우스를 세운다.1788년 그가 만든 첫 샴페인 '퀴베(Cuvée)'가 당시 여왕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헌사 되었고, 그 맛과 사랑에 빠진 여왕은 프랑스 왕실 연회마다 하이직의 샴페인 하우스를 사용하게 된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의 샴페인’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유럽 각국의 왕실이 사용하는 샴페인이 된다.

1837년 앙리 기욤 파이퍼(Henri-Guillaume Piper)가 회사를 물려받으며 샴페인 하우스를 '파이퍼 하이직'으로 개명했고, 2011년 럭셔리 브랜드와 금융 자산을 보유한 EPI 그룹으로 소속되면서 레어 샴페인을 포함해 파이퍼 하이직 하우스에 속한 모든 샴페인이 최고 샴페인 하우스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레어 샴페인의 시작은 파이퍼 하이직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러시아 황제의 주얼리를 담당했던 칼 파베르제(Pierre-Karl Fabergé)가 다이아몬드와 금, 청금석으로 장식된 병을 제작하여 'La Cuvée du Centenaire (the centenary vintage)' 샴페인을 내놓은 1885년으로 본다.우아하고 아름다운 순간에 함께하는 샴페인으로 각인
카밀라 카베요, 두아 리파 등 세계적인 셀럽이 '레어 샴페인' 찾아

긴 세월에 걸쳐 레어 샴페인은 ‘고급화’와 ‘한정된 특별함’ 그리고, ‘셀레브리티와 함께하는 샴페인’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칸 영화제 공식 스폰서였던 것과 1985년 보석 브랜드 반 클리프 앤 에이펠(Van Cleef & Arpels)과 협업한 희귀 빈티지인 '1976년 레어 샴페인'의 병 및 용기를 금과 다이아몬드로 디자인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샴페인은 총 3병 만들어졌으며, 1병은 랭스 본사에, 1병은 컬렉터의 손에, 1병은 도둑맞았다고 한다) 현재, 레어 샴페인을 사랑하는 유명 인사에는 세계적인 팝가수 카밀라 카베요(Camila Cabello), 두아 리파(Dua Lipa), 그리고 블랙핑크의 로제, BTS의 진 등이 있다.
'반클리프 앤 에이펠(Van Cleef & Arpels)'과 협업한 레어 샴페인 1976 빈티지 / 사진. © 이진섭
최고 품종의 포도, 200기통의 마법
유산 발효 방식으로 포도의 산도를 부드럽게 해줘

입구부터 코를 찌르는 숙성된 포도향으로 인해 찌푸려진 미간은 거대한 은빛 보일러 룸의 스케일에 압도되어 금세 펴졌다. 약 200기통이 넘는 양조 통에 수천 리터가 넘는 베이스 와인이 1차 발효를 거치고 있었다. 수확된 포도를 종류별로 구분하여 엄청난 크기의 사일로에서 착즙하고 이를 발효시켜 샴페인의 바탕이 되는 베이스 와인을 만든다. 파이퍼 하이직 계열의 샴페인은 레어 샴페인을 포함해 유산 발효를 시키는데, 이는 포도의 산도를 부드럽게 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샴페인의 베이스 와인을 만드는 발효 양조장 / 사진. © 이진섭
레어 샴페인 최소 8년~10년 이상 숙성 과정을 거쳐 탄생

발효과정을 거쳐 병입된 와인은 또 한 번의 숙성 과정을 거쳐 샴페인으로 변신한다. 샴페인을 만드는 과정, 숙성 방법, 기간 등 모든 것은 프랑스 원산지 호칭관리법(AOC법)을 따라야 한다. 포도는 샤르도네, 피노 누아, 피노 뫼니에 3가지를 사용하고, 손으로 수확해야 한다. 연도가 표기되지 않은 Non-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최소 15개월, 연도가 표시된 빈티지 샴페인은 최소 3년을 숙성시켜야 한다.

파이퍼 하이직 샴페인은 더욱 부드러운 향기를 위해서 3년 이상 숙성을 하고, 레어 샴페인은 최소 8~10년 숙성 과정을 거친다. 역시 명품은 시간과 노력이 수반된다.

샴페인 신비 체험을 하듯 스산한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그 속에는 엄청난 양의 와인들이 샴페인으로 태어나길 기다리며, 긴 잠을 자고 있었다. 구역마다 숫자가 적혀 있어 생산 연도냐고 물어보니, 포도의 품종, 샴페인 제조법, 레시피 등이 숨겨진 코드 넘버라고 한다. 이 숫자의 숨겨진 비밀은 오직 샴페인 메이커만 안다고 했다.
샴페인의 마법이 펼쳐지는 숙성고 카브 / 사진. © 이진섭
전설적인 샴페인 메이커 레지스 카뮈(Régis Camus)의
은밀하게 숨겨진 셀러

샴페인 동굴을 지나니 역대 가장 유명했던 샴페인 메이커, 레지스 카뮈(Régis Camus)의 프라이빗 셀러와 만날 수 있었다. 천재적인 후각과 미각으로 레어 샴페인의 럭셔리한 품격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레지스 카뮈는 세계적인 권위의 '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 대회'에서 무려 8번이나 '올해의 샴페인 와인 메이커 상'을 받은 업계의 전설이다.

그의 은밀한 샴페인 컬렉션을 들여다보니, 레어 샴페인의 역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빈티지 1976, 1979, 1988 등을 포함해 그가 공을 들여 만든 '레어 샴페인 2002'도 보였다. 생산된 지 40년이 넘는 샴페인과 대면하니, 마치 샴페인 거품을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본사를 포함한 전 구역이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매우 엄격하게 관리되는 곳이다 보니,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현재 수석 양조사 에밀리앙 부티아(Emilien Boutillat)가 레지스 카뮈의 전통에 자신의 철학을 가미해 파이퍼 하이직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어요"라고 모드 여사가 말했다.
'레지스 카뮈(Régis Camus)'의 개인적인 샴페인 컬렉션이 있는 은밀한 셀러 / 사진. © 이진섭
초록 윤슬로 물든 빈야드, 아이 샹파뉴
'레어 샴페인 밀레짐 2013'과 '레어 샴페인 로제 밀레짐 2014'
빈티지마다 풍미, 질감, 아로마의 정교한 색감 가져

투어를 마치고 아이 샹파뉴(Aÿ-Champagne)에 위치한 파이퍼 하이직 소유의 포도 농장으로 향했다. 15분 정도 달렸을까. 드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초록 윤슬로 물들어 있었다. 피노 누아의 성지답게 최상위 등급(그랑 크뤼)의 포도나무는 수확이 막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 있는 생명력으로 초록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수확한 포도로 '레어 샴페인'과 '레어 샴페인 로제'를 만든다.
파이퍼 하이직(Piper Heidsieck)이 소유한 샹파뉴 지역의 그랑 크뤼(Grand cru, 최상위 품종의 포도 농장) / 사진. © 이진섭
레어 샴페인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둘러보고, 샴페인을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모드 여사는 '레어 밀레짐 2013'과 '레어 로제 밀레짐 2014'을 나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It is Champagne Time.”
[좌] 레어 밀레짐 2013. [우] 레어 로제 밀레짐 2014. / 사진. © 이진섭
'레어 밀레짐 2013'은 샤르도네 70%와 피노 누아 30%로 만들어진 샴페인이며, '레어 로제 밀레짐 2014'는 샤르도네 60%와 피노 누아 40%의 배합으로 탄생한 샴페인이다. '레어 밀레짐 2013'은 목구멍을 부드럽게 긁어주는 청량감과 함께 금귤과 흰 꽃, 시트러스 향으로 피어났다. 이어서 사과, 레몬 같은 과일 맛과 묵직한 토양의 향이 올라오면서 맛은 긴 여운을 남겼다. 병에 담긴 샴페인이 이 지방을 둘러싼 토양, 햇살, 바람, 빗물 등 고유한 시간의 단면을 담고 있는 듯했다.

'레어 로제 밀레짐 2014'은 포도 본연의 향이 두드러졌다. 첫맛은 블랙 체리와 블러드 오렌지 향과 더불어 은은한 포도향이 두드러지게 치고 올라왔고, 다크 초콜릿 같이 짙은 맛도 났다. 신기하게도 구운 빵이나 머스크향이 났는데, 강한 개성을 띤 샴페인 같았다. 레어 샴페인은 풍미, 질감, 아로마 등이 섬세하게 설계된 느낌이었다.
[좌측부터] 레어 로제 밀레짐 2014, 레어 밀레짐 2013, 레어 로제 밀레짐 2012 / 사진. © 이진섭
샹파뉴의 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전원 교향곡’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샴페인 마에스트로의 통찰력과 깊이, 정교함과 미학이 필요하다. 레어 샴페인은 ‘최상위 품종의 포도’, ‘예술적 가치’, 그리고 ‘프랑스의 유산이라는 자부심’이 하나가 되어 정교하고 아름다운 트라이앵글을 선사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순간에 함께하고 싶은 샴페인이다.
Born In Champagne <Rare> / 사진. © 이진섭
샹파뉴=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