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경계 없는 노동… 우리는 준비가 안됐다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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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의 형태가 큰 변화를 겪어왔다. 플랫폼 경제의 발달로 인해 기존의 범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일이 등장했다. 프리랜서, 배달 노동자, 크리에이터 등 전통적인 고용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상품화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승윤 지음
문학동네
248쪽
1만7000원
이들의 노동환경은 여느 직장인들보다 더 자율적이고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경우가 많다. 보이지 않는 통제 속에서 더 위태로운 생존 조건에 처해 있기도 하다. 불안정한 노동자들의 삶을 연구해 온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에서 디지털 전환 시대에 달라진 노동에 관한 연구를 전한다. 저자는 단순히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가난하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익숙한 서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일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불안정성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 모호한 지위의 노동자를 둘러싼 제도적 노력이 어느 부분에서 실패하는지를 밝혀낸다.
저자는 먼저 혁신이라는 화려한 수사 뒤에 감춰진 노동의 퇴행 현장을 고찰한다. 새벽 배달 노동자, 산업재해 노동자, 가짜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살펴보며 시간과 돈이 모두 부족한 ‘이중 빈곤’에 내몰린 사람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회사들은 새벽 배송 노동자들의 시간당 업무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해 순위를 매기고, 이를 정규직 전환을 위한 경쟁 도구로 이용한다. 노동자들은 몇 단계 레벨로 분류되고 주어진 배송 물량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산재 혹은 병가를 신청하면 레벨 포인트의 감점으로 이어지게 된다.
2022년 안전운임제를 요구하며 대대적인 파업을 벌인 화물연대 기사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 ‘가짜 자영업자’라고 저자는 말한다. 학습지 교사, 배송기사 등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논한다. 기존의 제도가 한계를 드러내는 불확실한 시대에 노동자의 취약성을 인지하고, 노사 간 불신을 회복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불안정한 노동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일의 방식, 작업장의 범위, 정해진 노동시간, 고용주와 노동자의 명확한 관계가 모두 모호해진 형태다. 저자는 ‘액화 노동(melting labour)’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변화하는 노동의 모습을 포착한다. 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구성하던 여러 경계가 녹아내리는 현상을 설명한다.
저자는 청년층이 불안정 노동시장으로 주요하게 유입되는 현상을 살펴보며, 세대 내 격차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2002년의 청년들은 ‘약간 불안정’한 상태로 일하고 있는 집단이 가장 컸다. ‘불안정’하거나 ‘안정적’인 비율은 적었다. 하지만 2022년에는 양극단을 경험하는 비율이 1.5배 이상 높아지고 약간 불안정한 비율이 60%가량 줄었다. 불안정하거나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집단으로 양극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는 시대에 노동의 변화와 노동자의 생존 조건에 대해 더 깊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