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카라바조 그림 맞아?”…‘바로크 거장’ 전시에서 진품 논란 나온 이유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展
카라바조가 그린 걸작 10점 등 바로크 회화 57점 선봬

카라바조 그림 두고 일부 관람객 사이에선 진위 여부 논란도
카라바조, 그리스도의 체포(The Taking of Christ), 1602, 캔버스에 유채, 우피치미술관. /액츠매니지먼트 제공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도 “바로크적인….”이라는 말은 꽤 익숙하게 다가온다. 건축, 음악, 문학 등 문화예술 전반에서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극적이면서 사실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함께 서양 근세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사조로 꼽힌다.

그리고 고향 마을의 이름을 딴 카라바조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 메리시(1571~1610)는 바로크를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화가다. 특유의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인상적인 테네브리즘 스타일의 창시자로, 바로크 회화의 시발점이란 점에서다. 이탈리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로, 한 점이라도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라면 십중팔구 대표작으로 카라바조의 그림을 내놓곤 한다.▶▶[관련기사: 베르니니의 조각과 카라바조의 회화,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살아 숨쉰다]

이런 카라바조의 값비싼 그림들이 한두 점도 아니고 무려 10점이나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걸렸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 전시가 최근 개막하면서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세 점을 비롯해 쉽사리 감상하기 어려운 걸작들이 다수 출품된 터라, 개막 당일인 지난 9일에만 2000명 넘는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주목도가 높다.

그런데 흥분된 마음으로 전시를 관람하러 찾은 미술 애호가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들린다. “이거 정말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 맞아? 아무리 봐도 내가 본 그림이랑 다른 것 같은데….”
카라바조,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Boy Bitten by a Lizard), 1595,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액츠매니지먼트 제공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 런던과 피렌체 서울에 있는 이유

사정은 이렇다. 유럽 여행 중에 들른 미술관이나 미술사 공부를 위해 책이나 도록에서 본 카라바조의 그림과 전시에 걸린 작품이 묘하게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카라바조가 본인의 얼굴을 모델로 삼아 그린 대표작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에 대한 불신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로베르토 롱기 미술사 연구재단이 소장 중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전시에 걸린 작품은 ‘개인 소장’으로 쓰여 있다. 게다가 작품도 다른 두 소장처의 그림과 비교하면 도마뱀의 색깔이 다르고, 소년의 입술이 보다 빨갛다. 오른쪽 눈꺼풀 아래 고통으로 흘러나온 눈물이 선명하게 묘사된 건 전시작에서만 나타나는 특성이다. 카라바조는 유럽 회화에 새로운 흐름을 일으키며 루벤스와 렘브란트 같은 거장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만큼, 그의 스타일을 모방한 동시대·후대 작가들이 적지 않다. 관람객 사이에서 전시에 걸린 작품을 두고 위작이거나 모본일 가능성이 높다는 나름의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이 작품은 유럽 미술계에서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세 번째 버전이자, 오히려 다른 두 작품의 원형이 되는 원본일 가능성이 높은 카라바조의 그림이다. 로마의 한 컬렉터가 소유한 전시작이 다른 두 버전과 달리 2006년에서야 처음 발견됐고, 연구가 늦어지며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카라바조에 영향을 받은 작가, 성 토마스의 의심(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16901~1602, 캔버스에 유채, 우피치미술관. /액츠매니지먼트 제공
실제로 카라바조는 생전에 같은 작품을 여러 점 그렸다. 이는 종교개혁으로 흔들렸던 가톨릭이 권위를 되찾아가던 당시 시대상과 연관이 깊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개신교에 맞서 가톨릭계의 유대감을 키울 장치로 권위 있는 작가의 그림이 활용됐는데, 이에 따라 로마에서 잘나가는 작가였던 카라바조에게도 같은 그림을 그려달라는 의뢰가 여러 차례 들어왔다. 원본은 단 한 점이고, 그 외엔 레플리카(복제품·모작)으로 인식되는 요즘과는 달리 당대엔 진품이 여러 점인 이유다. 호정은 큐레이터는 “현대적인 관점에선 하나의 원본과 복제품인 여러 점의 에디션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엔 개념 자체가 달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후 400년이 지난 20세기 들어서야 카라바조의 그림이 재평가되며 연구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옛 귀족 등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져 오던 작품들은 카라바조가 그렸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 들어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전시 작품들은 귀속 과정 등을 확인한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추정작이나 후대 작가가 개입한 작품들도 명확하게 구분 지었다”고 덧붙였다.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6,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액츠매니지먼트 제공
카라바조를 존경하는 작가가 완성한 그림도

우피치 미술관 소장품으로 전시에 나온 ‘성 토마스의 의심’은 카라바조의 그림이지만 카라바조의 그림이 아니다. 이 작품엔 ‘카라바조 서클(Caravaggio circle)’이라고 쓰여 있다. 카라바조가 밑그림만 그려 놓은 작품을 그의 영향을 받은 후대 작가가 완성했단 뜻이다. 다만 ‘성 토마스의 의심’은 독일 포츠담 상수시 궁전에 있는 국립 회화관 소장본이 원본이지만, 전시작 역시 우피치 미술관이 수장고에 보관할 정도로 빛과 인체의 해부학적 표현 솜씨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리스도의 체포’도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소장품으로 유명한 이 그림은 1602년 치리아코 마테이가 카라바조에게 의뢰해 만들어졌는데, 전시작이 오히려 원본일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귀속 과정이 상세하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의 경우 이탈리아 로마의 보르게세미술관이 소장한 작품과 달리 다윗의 오른팔이 전부 그려졌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데, 이 작품 역시 17세기에 보르게세 컬렉션으로 소장돼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전시에서 이런 카라바조 작품 특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카라바조(추정), 과일 껍질을 벗기는 소년(Boy Peeling Fruit), 1593, 캔버스에 유채, 개인소장. /액츠매니지먼트 제공
기존에 알고 있던 카라바조의 그림과 얼마나 닮았고, 어디가 다른지를 비평하며 보는 게 전시의 묘미다. 카라바조의 괴롭힘으로 그를 증오했지만, 그림만은 닮고 싶어 했던 조반니 발리오네 등 바로크 회화를 수 놓은 화가들의 작품도 함께 즐길 수 있다. 호 큐레이터는 “카라바조의 작품은 지금도 연구 중에 새로운 사실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전시장에서 카라바조의 그림을 두고 새로운 지식의 장(場)이 펼쳐지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7일까지.

유승목/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