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기업 키우려면 제3자 승계 지원 위한 특별법 필요"

'중소기업 기업승계 좌담회'

친족 승계 아닌 제3자 승계도 '기업승계'로
수요 기업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우선

정부, 금융·M&A 지원 등 담은 특별법 연내 마련
지역 은행, 지자체 등 거점 활용해 실효성 높여야
"첫째 딸은 시집 가서 경영에 관심이 없고 둘째 딸이 회사에서 2인자로 근무 중인 중소기업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당연히 딸이 이어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40대 후반인 둘째가 자기 인생 살겠다며 오히려 부친에게 매각하자고 설득했다고 합니다. 이런 기업이 전국에 수두룩합니다."

2008년부터 기업 간 인수합병(M&A) 중개 업무를 맡고 있는 김진형 IBK기업은행 M&A사업팀장의 전언이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중소기업 기업승계 좌담회'에서 나온 얘기다. 60~70대 창업주가 건강상의 이유로 대물림을 고려하지만 자녀들은 이어받을 마음이 없어 뜻하지 않게 갑자기 회사를 매각하는 사례가 넘쳐난다는 것. 김 팀장은 "평생 일군 회사를 생판 모르는 남에게 파는 일이 창업주로서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누구한테 얼마에 팔아야 할지 정보 접근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M&A 중개 지원 정책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성장을 위한 M&A 지원 필요"


중소벤처기업부가 ‘100년 기업’을 위한 기업승계 특별법을 연내 발의키로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중기부는 특별법에 담길 내용의 구체화를 위해 이달 중 외부 연구 용역 결과를 모아 법안을 마련키로 했다. 제3자가 기업을 승계할 때도 금융 지원 등의 혜택을 주고 기업간 거래시 인수합병(M&A) 자문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특례 조항이 담길 전망이다.특별법 제정은 국내 중소기업 창업주들이 노령화되고 2, 3세로 대를 잇는 가업승계가 어려워 ‘100년 기업’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에서 시작됐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가업 승계’가 아닌 ‘기업 승계’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절실함이 깔려있다.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올 들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중기부 중소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의 최고경영자(CEO) 평균 나이는 2012년 51.3세에서 2022년 55.3세로 4살 더 많아졌다. 60세 이상 CEO의 비중도 같은 기간 14.1%에서 33.5%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그러나 자본시장연구원이 지역별 ‘60세 이상 기업인들의 후계자 부재율’을 추정한 결과 전국 평균 28.6%로 나타났다. 30% 가까운 기업들이 물려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세 경영만으로는 기업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경영권이나 지분 매각을 통한 기업 승계를 적극 지원해줘야 하는데 데이터베이스가 없어 적절한 대상자를 찾기도 어렵고 중개수수료를 부담스러워하는 기업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승계 대상이 되는 800여개 중소기업을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어려움으로 적절한 매수자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을 꼽았고 중개수수료가 부담된다는 답변도 많았다"며 "정부가 확실하게 지원해주면 제3자에게 승계하는 M&A 거래가 더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기업승계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기업의 성장을 꼽는 전문가도 있었다. 매수 희망 기업이 경영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뿐 아니라 회사가 급성장할 때 매각을 원하는 기업도 많다는 지적이다. 이도신 삼일회계법인 중소벤처M&A지원센터장은 "중소기업이 갑자기 성장하다 보면 영업, 관리 등 여러 측면에서 기존 경영자들이 이끌어가기에 어려운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며 "회사를 더 잘 이끌어어줄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의욕과 능력이 넘치는 기업에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같은 한계로 매각을 희망하는 기업은 관련 업종이나 신사업을 추진할 기업 등 딱 맞는 수요기업과 연결시켜줄 필요가 있다"며 "특별법에 규제 완화, 특례도 담겨야 하지만 M&A 정보 공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형 팀장도 "자녀 등 친족승계와 제3자 승계는 결국 기업가치를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며 "현재 60대 이상 CEO가 이끄는 기업뿐 아니라 4050 창업주들이 이끄는 젊은 기업들까지도 향후 잠재 수요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보탰다.

"DB 구축과 인식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규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은 1990년대부터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해지다가 2008년도에서야 경영승계원활화법을 제정했는데 법 제정 이후 M&A 시장이 커지고 여러 사회 문제가 줄었다"며 "중소기업의 후계자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법률 제도 정비와 함께 금융 지원, 세금 혜택, 광역자치단체와의 협력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좌담회를 진행한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상속세, 증여세 등 세금 부담으로 인한 가업 승계의 어려움뿐 아니라 체계적으로 기업을 잘 운영할 사람, 기업을 찾는 일도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친족 승계뿐 아니라 제3자 승계도 100년 기업을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온 사회가 공감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고 했다.전문가들은 법 제정 추진과 함께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용린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기업승계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데이터가 전혀 구축돼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대상이 되는 기업도 현재로선 추정을 할 뿐이기 때문에 DB 구축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승계 '대기 수요'가 많다는 측면에서도 DB 구축과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진형 팀장은 "중기부의 특별법 제정이 본격화되면 숨겨져있는 대기 수요 기업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건전한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넓은 운동장을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특별법 제정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치 않는 방향으로 기업을 매각하는 등 시장의 혼탁 가능성을 예방할 수 있도록 현 시점에서의 특별법 제정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 기업들 간의 협업 중요성도 거론됐다. 실제 수요가 있는 해당 지역의 주거래 은행에서 M&A 컨설팅을 진행하고 금융 지원도 해주면 실효성이 높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도신 센터장은 "삼일회계법인이 지역은행과 손잡고 지방기업 설명회, 상담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실수요가 있는 곳에서 기업의 주거래 은행이 역할을 해주는 게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기업가를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창업가가 기업을 일궈온 노력과 그 기업의 가치, 혁신을 이뤄낸 과정 등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계승해 '100년 기업'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 추문갑 본부장은 "친족승계가 불가능한 기업은 매각이 불가피한데 우리 사회엔 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직까지 강하다"며 "사회적 인식 개선과 함께 정부가 금융지원, M&A 지원 등을 담은 특별법을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