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타적 선택의 역설

황영미 영화평론가·前 숙명여대 교수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형과 동생 부부가 멋진 차림으로 파인다이닝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고 있다. 오가는 대화는 치매 걸린 노모를 요양병원에 모실 것인가에 대해서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동생 부부에게는 형의 말에서 느껴지는 모종의 책임감마저 달갑지 않아 형에게 까칠하게 대꾸한다. 고3인 자녀들의 문제도 성적에 대한 비교로 긴장감이 서려 있는 날 선 대화가 이어진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보통의 가족’은 이처럼 골이 깊게 팬 가족·형제간 갈등을 드러낸다. 성공한 변호사 형 재완(설경구 분)은 돈만 된다면 재벌집 아들이 충동적인 보복운전으로 낯모르는 타인을 살해한 사건의 변호를 맡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사별한 재완과 결혼한 후 늦둥이를 출산한 지수(수현 분)다. 동생 재규(장동건 분)는 이타적이고,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시하며 아내와 함께 해외봉사도 하는 성실한 소아외과 의사다. 연상의 아내는 성공한 프리랜서 번역가인 연경(김희애 분)으로 치매 노모를 모시고 있고 외아들 사랑에 극진하다. 제목처럼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 간 갈등으로 시작하지만, 각자의 자녀들이 함께 저지른 우발적인 노숙자 살인사건 때문에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는다.이 영화는 자녀들이 살인 같은 큰 범죄를 저질렀을 때 처벌받게 하는 게 자녀를 위한 부모의 올바른 판단인가와 같은 딜레마에 빠뜨린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범죄를 덮어도 되는가, 선과 악의 문제가 내 가족의 경우에도 객관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제기한다. 연경은 ‘애 자수시키려면 나부터 죽여라’고 소리 지르는 판국이다.

네덜란드 소설가 헤르만 코흐의 <더 디너>를 한국 현실에 적용해 각색한 이 영화는 소설과는 설정이 조금 다르고 같은 원작으로 만든 이탈리아 영화 ‘더 디너’(2015)와 더 비슷하다. 변호사인 재완은 원래 아이들을 법정에 세우지는 말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런데 살인사건 당사자인 딸과 조카가 노숙자의 죽음에 대해 장난 삼아 얘기하는 모습, 노숙자가 결국 사망했다는 말에도 ‘죽었으면 다 된 것 아니야’라며 뻔뻔스럽게 말하는 것을 본 뒤 자신이 자식을 이런 괴물로 키운 것 아닌가 하는 반성으로 자수시키려고 결심한다. 이 영화는 설교하거나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정의, 도덕성, 부모의 역할, 가치, 신념 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주인공들의 양심을 시험한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는 이타적인 선택까지도 종을 퍼뜨리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했다.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이타적 선택도 교육적인 측면에서 결국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